[신중국70년] ②죽의 장막 걷고 일대일로…美와 패권경쟁

입력 2019-09-29 12:00   수정 2019-09-29 13:28

[신중국70년] ②죽의 장막 걷고 일대일로…美와 패권경쟁
美는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차단 나서…'투키디데스 함정' 피할 수 있나
덩샤오핑 유훈 도광양회 옛말…유라시아 넘어 세계로 팽창 도모
한국에도 '선택의 시간' 온다…中, '韓 적극 참여' 강력 희망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죽(竹)의 장막'.
1949년 10월 1일 톈안먼(天安門)에서 수립을 선언한 신생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역사적 전환점인 개혁개방을 맞기 전까지 걸어간 폐쇄적 대외 정책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시절 '죽의 장막' 속에서 은둔한 채 '자력갱생'을 외치던 중국이 새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뜻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앞세워 유라시아는 물론 세계로 뻗어 나가며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의 70년사를 관통하는 가장 극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중국 주도로 세계 교통·무역망을 연결하는 경제 구상인 일대일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시대를 대표하는 적극적 대외 전략이다.
시 주석은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일대일로 개념을 처음 공식 제기했다.
육지를 잇는 실크로드 경제 벨트(一帶)와 바닷길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합친 개념이다.
일대일로는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자국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전략적 구상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정면 대결을 피하고 얼핏 보면 중립적인 경제 분야를 통해 세력 확장을 도모하는 것은 중국 특유의 전략적 전통과도 맥이 닿는다.
미국 외교의 거두인 헨리 키신저는 저서 '중국 이야기'(On China)에서 힘의 대결을 상징하는 서양의 체스와 오묘한 세력 확장 싸움인 바둑을 비교했다. 그러면서 예로부터 중국 정치인들은 섬세한 전략을 세워 경쟁자보다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방식을 선호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이 일대일로 추진을 계기로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이 제시한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대외 정책 기조가 사실상 폐기됐다는 점이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신형 대국 관계', '신형 국제관계' 등의 외교 개념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대국'임을 자처하고 있다. 더는 중국이 가진 힘을 숨기지 않겠다는 노골적 선언이기도 하다.
중국은 막대한 해외 투자 능력과 방대한 자국 시장을 앞세워 빠르게 '일대일로 블록'을 키워나가며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흔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 4월을 기준으로 일대일로 참여국은 126개국, 29개 국제기구로 늘어났다.
일대일로 참여국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 중국에 인접한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빈국 중심에서 서유럽 국가들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독일의 고급 차인 포르쉐가 일대일로를 통해 연결된 화물 열차를 통해 단 3주 만에 독일에서 중국 충칭(重慶)까지 운반·수출되는 것은 일대일로의 한 활용 사례다.
올해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서유럽 국가들도 일대일로에 동참하거나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채무 함정' 등 일대일로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빚으로 저개발 국가들을 예속시키는 데서 나아가 군사 기지 사용권까지 얻어내는 등 '신 식민주의'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파키스탄은 채무 부작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파키스탄은 일대일로와 관련해 62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차관을 들여왔지만 빚더미에 올랐다. 결국 파키스탄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처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됐다.
이 같은 논란을 떠나 일대일로를 계기로 미국이 중국의 '야심'에 위기감을 느끼고 본격적인 대중 압박 정책을 펼치고 나선 점은 중국에도 큰 도전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전략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섰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최근 몰디브에서 열린 '인도양 콘퍼런스(IOC) 2019' 기조연설에서 일대일로 정책 뒤에는 약탈적 경제 정책이 깔려있다며 "투명성을 지향하는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다른 나라들을 빚의 함정에 빠뜨려 주권을 위협한다"고 힐난했다.
또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UCESRC)도 작년 말 편 보고서에서 "중국의 부상은 명백히 미국과 동맹국에 군사 안보와 경제적 이익에 위험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는 중국의 팽창 전략에 관한 워싱턴 조야의 우려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작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이래로 미국이 통상, 기술, 안보, 인권 등 전방위에 걸쳐 중국을 강력히 압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팽창 전략과 미국의 억지 전략 사이에서 빚어지는 충돌의 일환이라고 보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나아가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대결 구도를 '신냉전'의 틀로 분석하거나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이 반드시 충돌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비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일대일로를 둘러싼 미중 대결이 한반도와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국도 '일대일로 열차'에 올라탈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자국의 동북 지역과 남·북한, 일본까지 아우르는 동북아로 일대일로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 측에 일대일로에 적극적인 참여를 희망한다는 뜻을 보내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공식 참여하는 방안에는 아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대 교역국이자 한반도 평화 유지의 중요 행위자인 중국과의 협력이 중요하지만 핵심 동맹인 미국이 일대일로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한국이 진정으로 중국과 관계 발전을 원한다면 적어도 일대일로와 관련해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밝혀주면 좋을 것"이라며 "미국과 동맹인 일본도 이미 일대일로 관련 제3국 투자를 함께 진행하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한국의 참여를 독려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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