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법원의 재가동 승인 불구, 주민 반발 못넘어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미국 최대 규모 의료기기 소독 서비스 전문업체 '스테리제닉스'(Sterigenics)가 발암 물질 배출 논란을 빚은 시카고 인근 공장에 새로운 공기 정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당국과 법원으로부터 재가동 승인을 얻은 지 20여 일 만에 돌연 철수 방침을 밝혔다.
스테리제닉스는 30일(현지시간) "재가동 승인이 난 시카고 남서부 교외도시 윌로브룩의 멸균 공장 한 곳을 영구 폐쇄하고, 재가동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 중이던 인근 공장도 포기하겠다"며 이들 공장 기능을 제3의 곳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스테리제닉스 측은 "일리노이 주 당국이 재가동 기회를 준 데 대해 감사한다. 그러나 스테리제닉스에 대한 부정확하고 근거없는 주장, 일리노이 주의 불안정한 입법·규제 환경으로 인해 언제 또 운영이 중단될 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주요 공장을 유지하는 것이 신중치 못한 결정일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철수 배경을 설명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결정을 스테리제닉스 퇴출 운동을 적극 펼쳐온 지역 주민들의 승리로 보도하고 있다.
스테리제닉스는 산화에틸렌(EO)을 이용한 의료기기 소독·멸균 서비스를 대행하는 기업으로, 전세계 13개국 50여 곳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일리노이 주 검찰은 "스테리제닉스가 배출하는 EO 가스로 인해 암에 걸렸다"는 주민 소송이 이어지자 지난해 스테리제닉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 환경청(EPA)은 조사를 거쳐 지난 2월, 가동 중단 명령을 내렸다.
스테리제닉스는 EO 가스 배출량을 90% 이상 줄일 수 있는 공기 정화 설비를 새로 설치하고, 환경 당국의 배출 기준을 준수한다는 조건으로 지난 7월 일리노이 주 사법당국과 재가동에 합의했으며 2달 만인 이달초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윌로브룩과 인근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은 이에 반발, 법원에 공장 재개 보류 청원을 제기했다.
시장과 지역사회 리더들은 스테리제닉스 공장 건물 압류를 주장했고, 주민 목소리가 단호해지자 친기업 정치인들 조차 설비 폐쇄를 요구했다.
스테리제닉스는 결국 건물 임대 재계약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NBC방송은 스테리제닉스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 사례는 40건에 달한다고 전했다.
소송 대리를 맡은 안토니오 로마누치 변호사는 "스테리제닉스 공장 인근 거주자들은 이 위험한 시설의 재가동 소식에 몸서리를 쳤다"면서 "스테리제닉스는 농도 높은 유독 화학물질 EO를 대기 중에 방출시켜 수많은 생명이 위험에 처하도록 하는 일을 반복해왔다"고 주장했다.
스테리제닉스 측은 제기된 소송의 가치를 폄하하면서 "적극 방어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J.B.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이번 스테리제닉스의 결정과 관련 "일리노이 주민들이 힘을 모을 때 건강과 안녕을 함께 지켜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지난 2월 스테리제닉스 가동이 중단된 후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EO 규제법을 제정하는 등 주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란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결과"라고 자평했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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