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해산 선언 후 의원들 의회 출입 통제…헌법해석 논란 여지는 남아
부패 척결 염원하는 페루 국민, 이틀 연속 의회해산 환영 시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대통령의 의회 해산 선언으로 페루 정국이 격랑 속에 빠졌다.
부패 척결을 염원하는 여론을 등에 업은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과 '쿠데타'라며 저항하는 야당 의원들의 대치로 정국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회 해산이 선언된 다음 날인 1일(현지시간) 수도 리마의 의회 건물은 굳게 닫혔고 일대 경비는 한층 삼엄해졌다고 엘코메르시오 등 페루 언론들은 전했다.
경찰은 헌법에 따라 의회 해산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갈 상임위원회 위원 27명을 제외한 의원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러나 전날부터 자리를 지킨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건물 안에 남아 해산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페루 안디나통신에 따르면 이번 의회 해산으로 의원들은 30일 후 면책특권을 상실한다. 이미 의원 중 2명은 페루 밖으로 떠났다고 로이터통신은 현지 언론을 인용해 전하기도 했다.
비스카라 대통령은 전날 의회가 법관 임명절차 개선안과 연계한 정부 신임안 처리를 거부한 채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하자 의회 해산을 선언하고 내년 1월 26일 총선을 치른다고 발표했다.
페루 헌법은 의회가 정부 신임을 두 차례 거부하면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번 의회는 지난 2017년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전 대통령 재임 중 한 차례 정부를 불신임한 바 있다.
의회는 해산을 거부한 채 대통령이 헌법 질서를 파괴했다며 대통령 직무정지를 가결했고, 메르세데스 아라오스 부통령을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한 나라 두 대통령' 상태가 된 셈인데 이미 해산된 의회가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대통령 직무정지와 임시 대통령 추대가 정당성을 갖기는 힘든 상태다.
다만 비스카라 대통령의 의회 해산이 적법한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대통령은 의회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한 것을 정부 불신임으로 간주했는데, 의원들은 의회가 정부 신임을 명백하게 거부할 때에만 의회 해산 요건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이어질 경우 헌법재판소가 최종 판단을 하게 된다.
이날 미주기구(OAS)는 성명에서 "정부 결정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책임"이라면서 다만 "페루 국민이 선거를 통해 현재의 정치 대립을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새 총선 실시에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페루 국민은 일단 비스카라 대통령의 편에 서 있는 듯하다.
전날 의회 해산 결정 후 군과 경찰이 곧바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고, 일부 주지사를 포함한 수천 명의 페루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의회 해산을 환영했다. 의회 반대 시위는 이날도 이어졌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75%의 국민이 조기 총선을 통한 의회 재구성을 원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의원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팽배하던 상황이다.
이처럼 여론이 대통령을 더 지지하는 것은 비스카라 대통령과 의회의 갈등이 기본적으로 반(反)부패 대 부패의 대결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비스카라 대통령의 의회 해산 결정을 부른 것은 헌법재판관 임명이었지만 이는 반부패 개혁을 둘러싸고 의회와 벌였던 오랜 갈등의 연장선이었다.
부통령이던 비스카라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쿠친스키 전 대통령이 브라질 건설사 오데브레시 뇌물 스캔들로 연루돼 사임한 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정치 경력이 길지 않은 그는 취임 후 페루 정치권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의원 면책특권 제한 등 반부패 개혁 입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 야당이 장악한 의회와 계속 충돌하자 그는 2021년 예정된 대선과 총선을 모두 1년씩 앞당기자고 제안하기도 했으나 의회가 거부했다.
비스카라 대통령과 맞서는 최대 야당인 민중권력당(FP)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가 당수로 있는 정당으로, 권력형 부패에 깊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
전날 의회해산 환영 시위에 나선 시민 제니 산체스는 AFP통신에 "그동안 너무 많은 부패가 있었다. 이제는 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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