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이탈리아어 홀대 교육장관 자격 없다" 사임 요구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의 교육부 장관이 자녀를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학교에 보내면서 모국어 시험까지 치르지 않도록 한 것으로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4일(현지시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따르면 로렌초 피오라몬티 교육부 장관은 3년 전 아들(8)을 이탈리아 현지 초등학교가 아닌, 국제학교에 입학시켰다.
외국인 학생이 30∼40%에 달하는 이 학교는 1∼2학년은 100%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3학년부터 원하는 학생에 한해 이탈리아어 수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어 시험 역시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다.
그런데 피오라몬티 장관은 아들이 3학년으로 진학하기 전인 작년 이탈리아어 시험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 학교 측 질의에 시험을 보지 않겠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피오라몬티 장관의 아들은 이탈리아어 수업을 듣기는 했으나 시험은 치르지 않았다. 학교 측 관계자는 피오라몬티 장관 아들이 이탈리아어를 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현지에선 이탈리아의 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이 자녀를 외국인 중심의 국제학교에 보낸 것도 모자라 모국어인 이탈리아어 교육까지 홀대한 거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됐다.
극우 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FdI) 부대표인 페데리코 몰리코네는 "교육부 장관이 그의 아들을 오직 영어만으로 수업하는 학교에 입학시켰다. 모국어를 경멸한다면 이탈리아 교육을 대표할 수 없다"며 사임을 요구했다.
논란이 일자 피오라몬티 장관은 해외에서 태어나 자란 아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막 돌아와 이탈리아어를 말하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학교측 권고에도 이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나는 언론의 자유를 항상 보호해왔다. 하지만 8살짜리 아이까지 취재 대상으로 한 것은 일종의 폭력 행위"라며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피오라몬티 장관은 "언론 보도로 인해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사생활 침해 구제 기관에 진정서를 내겠다고도 했다. 피오라몬티 장관의 아들은 최근 학교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소속의 피오라몬티 장관은 남아공 프리토리아대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당내에서 비교적 진보적 색채를 띤 인물로 꼽힌다.
환경친화적 경제성장을 강조해온 그는 지난주 학생들이 주도하는 기후변화 대응 촉구 집회를 앞두고 집회 참석 학생들을 결석 처리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통보문을 전국 일선 학교에 보내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학교의 종교·문화적 다양성이 확보되도록 교실에서 십자가를 떼어내자는 의견을 밝혀 가톨릭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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