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 수상자 요시노, 대학 때 고고학동아리 활동…"통찰력의 기초"
문외한이었지만 신사업 찾다가 연구 시작…청소하다 발견한 논문이 계기
"10년 앞 보고 해결하는 게 기술개발"…학생들엔 "벽을 고맙게 생각하라"
대학 아닌 기업서 연구해온 인물 '의미'…日, 세계 5위 노벨상 수상자 배출국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리튬이온 전지 개발로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일본인 연구자가 대학 시절 고고학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이색 이력을 갖고 있고, 고고학이 전지 연구의 바탕이 된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전날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요시노 아키라(71·吉野彰) 아사히카세이(旭化成) 명예 펠로는 교토(京都)대 재학 시절 고고학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일찌감치 과학에 흥미를 갖고 당시 인기가 높았던 석유화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동아리 활동은 고고학을 선택했다. 고교 시절 유적 발굴을 도운 경험이 계기가 됐다.
그는 매일같이 나라(奈良)와 교토 등의 유적지를 찾아다녔고 교토의 가타기하라 사찰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
언뜻 보면 고고학 동아리 경험은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준 리튬이온 전지 개발과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고고학 연구 경험은 리튬이온 전지 연구의 밑바탕이 됐다.
아사히는 요시노 씨가 "고고학의 연구는 화학과 비슷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문자가 없는 시대에 연구의 실마리가 되는 것은 출토된 토기 등의 물적 증거뿐인데, 고고학 발굴에 힘쓰면서 이런 '증거'를 겸허하게 대하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요시노 씨는 "고고학을 접한 것이 이후 연구개발에 상당히 도움이 됐다"며 "고고학과 화학 모두 실증과학이며 얼마나 새로운 데이터를 세계에 먼저 제시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설명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요시노 씨가 고고학 동아리 생활에 대해 "인생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경험"이라고 말했다고 전하며, 전문이 아닌 분야를 접한 것이 많은 연구자로부터 신뢰를 받는 통찰력과 인격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요시노 씨는 대학이 아닌 기업에서 연구 활동을 펼쳐온 '샐러리맨 연구자'로, 대학원 졸업 후 24세 때인 1972년 화학기업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해 지금까지 몸을 담고 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여자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마이클 패러데이의 강연집 '촛불의 과학'을 접한 뒤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마이니치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보도를 종합하면 그는 지금은 리튬이온 전지의 대가로 노벨 화학상까지 받게 됐지만, 당초에는 전지 분야의 문외한이었다.
1981년 다른 연구자인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 박사(2000년 노벨 화학상 수상)가 발견한 '도전성고분자'(전기가 통하면서도 금속에 비하여 가볍고 가공성이 우수한 플라스틱)를 응용할 신사업을 찾던 중 시라카와 박사의 연구 결과에서 힌트를 얻어 리튬이온 전지 개발을 시작했다.
리튬이온 전지 개발의 또 다른 계기가 된 것은 사무실 대청소 중 찾아낸 논문 한 편이었다.
이번에 노벨 화학상을 함께 타게 된 존 구디너프(미국·97) 박사의 논문으로, "코발트산 리튬은 전지의 '정극'에 사용할 수 있지만 반대의 '부극'에 쓸 재료가 없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이 논문을 토대로 정극에 코발트산 리튬을, 부극에 시라카와 씨의 연구에서 힌트를 얻은 폴리아세틸렌을 사용했더니 전지의 성능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이는 1985년 리튬이온 전지의 원형 완성으로 이어졌다.
당장은 수요가 적었지만 리튬이온 전지의 개발은 이후 소형화를 거쳐 휴대용 전자기기의 개발과 확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요미우리신문은 요시노 씨가 "10년 앞을 내다보고 해결하는 것이 새로운 기술 개발"이라고 말해왔다며 이런 강한 생각이 리튬이온 전지 개발의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 "연구의 묘미는 실험이다. 특히 상상외의 결과가 나올 때는 재미있다"는 말을 하며 연구 활동에 매진했다.
그가 2017년부터 강의를 하는 메이조(名城)대의 한 학생은 도쿄신문에 "벽에 부딪쳐라. 벽을 고맙게 생각해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요시노 교수가 항상 수요와 기술을 의식하라며 미래에 필요할 기술을 내다보고 연구를 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요시노의 노벨 화학상 수상으로 일본은 25명째 일본 국적자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 출신이지만 다른 나라 국적을 보유한 수상자 3명을 포함하면 수상자는 28명으로 늘어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문부과학성의 자료를 인용해 작년 연말 기준 일본이 미국(265명), 영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라고 설명했다.
요시노 씨의 수상은 그가 대학이 아닌 기업에서 연구를 계속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기업이 노벨상을 받을 만큼 큰 업적의 연구를 꾸준히 지원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어서 한국 기업들의 연구개발 풍토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만하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중 샐러리맨 출신은 2002년 43세의 나이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의 사례가 있다.
다나카 씨는 교토(京都)의 정밀기기 회사 시마즈(島津)제작소의 학사 출신 연구원으로, 당시 주임 직책이었다.
요시노 씨의 경우 교토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아사히카세이에서 연구 활동을 벌여왔고 57살이던 2005년 박사학위(오사카대)를 취득했다.
주목받지 못했던 다나카 씨와 달리 요시노 씨는 이미 여러 차례 국내외에서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유력한 노벨상 수상 후보였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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