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가 2차대전 때 美 안 도왔다?…학계 "전장에 있었다"(종합)

입력 2019-10-11 16:38  

쿠르드가 2차대전 때 美 안 도왔다?…학계 "전장에 있었다"(종합)
美·유럽 사학자들 "쿠르드족, 연합군 일원으로 2차대전 참전" 주장
"2차대전 상황 들먹이는 트럼프 발언, 역사적·정치적으로 말이 안 돼"



(서울=연합뉴스) 김형우 임성호 기자 = "쿠르드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도 돕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다."
시리아 쿠르드족을 겨냥한 터키의 군사작전을 묵인했다는 논란으로 거센 역풍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쏟아낸 '돌발 발언'이다.
한때 미국을 도와 '이슬람국가'(IS) 퇴치에 피 흘린 시리아 쿠르드족이 터키의 총구 앞에 몰린 상황에서 나온 이 발언은 동맹 경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2차대전 발언'은 논란 이전에 사실관계부터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0일 보도했다.
2차대전에 실제로 쿠르드족 일부가 미국·영국·프랑스 등이 참전한 연합군의 편에 서서 싸웠다는 기록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쿠르드족은 당시에도 독립 국가를 갖지 못해 국가 단위로는 참전할 수 없었으나 개인 자격으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 역사, 정치, 사회'를 저술한 조르디 테젤 스위스 뇌샤텔대학 사학과 교수는 쿠르드족 전투원들이 영국군이나 옛 소련의 붉은 군대에 합류해 함께 싸운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쿠르드족 출신의 분석가인 무틀루 시비로글루를 인용해, 오토만 제국이나 터키에 의해 소련으로 쫓겨난 일부 쿠르드족이 소련군 소속으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고 전했다.
시비로글루는 "그들은 나라가 없었다. 아무 군대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2차대전에) 참전했다"며 증거는 쿠르드족의 전통민요나 책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2차대전에 참전해 러시아 영어신문에 나온 사만트 알리예비치 시아반도프를 사례로 들었다. 시아반도프는 쿠르드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사람이다.



테젤 교수는 일부 쿠르드족은 나치 독일군을 '영·불 식민지주의에 맞서는 대안 세력'으로 인식해 그들에 동조하기도 했으나, 다른 이들은 '전력을 다해' 중동 지역에서 나치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데 힘썼다고 강조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이라크 내 친나치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랍 민족주의자 총리를 필두로 한 군사정권을 세웠을 때 쿠르드족이 이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아킬 아완 로열 홀러웨이 런던대 교수를 인용,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라크를 식민지배하던 영국은 1차대전 말기 자신들의 통치를 지원하기 위한 군사조직(Iraqi Levies)을 육성했다.
1941년 이라크에 친나치 군부 세력이 들어서자 영국공군(RAF)은 이 군사조직의 도움을 받아 당시 정권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아완 박사는 1942년까지 쿠르드족이 이 군사조직의 25%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타임스는 유전지대인 이라크를 나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쿠르드족 덕분에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사용한 '상륙주정'에 안정적으로 기름을 넣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1차대전 말기의 쿠르드족 역사를 주로 연구해 온 제네 리스 바자란 미국 미주리주립대 중동 역사학 부교수도 "(쿠르드족처럼) 민족국가를 지니지 못한 이들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하지는 않았을 수 있어도, 직접 전투에 뛰어들거나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노동력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바자란 교수는 쿠르드족이 미국을 도운 사례는 보다 최근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쿠르드족이 "2003년 이라크전 북방 전선에 투입된 병력 중 대부분을 차지했다"면서 중동에서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원해왔다고 짚었다.
바자란 교수는 그러면서 70년 넘게 흐른 2차대전 당시의 상황을 들어 쿠르드족을 내치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WP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적이었던 독일이나 일본을 거론하면서 2차대전 때 어느 편에 섰느냐에 따라 반드시 오늘날 미국의 동맹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으로 불리는 쿠르드족은 주로 시리아 북동부, 이라크 북부, 이란 북서부, 터키 남동부, 아르메니아 남서부 등 5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전체 수는 3천만~4천만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수도 다마스쿠스 방어를 위해 시리아 정부가 북동부를 비우자 이 지역을 차지한 뒤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를 앞세워 사실상 자치를 누려왔다.
2014년 IS가 발호하자 YPG는 자치 지역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항전했고, IS와의 싸움에서 신뢰할 만한 파트너를 찾던 미국은 본격적으로 쿠르드족을 지원해 YPG는 IS 격퇴 지상전의 선봉에 섰다.
지난 3월 IS 최후의 저항 거점 바구즈 함락의 주역도 YPG가 주축을 이룬 시리아 민주군(SDF)이었다. 쿠르드족은 5년간 이어진 대(對) IS 전투에서 1만1천명의 목숨을 잃었다.
SDF의 키노 가브리엘 대변인은 지난 7일 아랍권 매체 알하다스 TV를 통해 "미국은 절대 이 지역(시리아 북동부)에서 터키의 군사행동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확언했었다"며 "등에 칼을 꽂은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s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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