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12년만에 사우디 방문…OPEC+ 고리로 협력 부각
시리아 내전 영향력 확대…이란과도 전통적 우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갈등과 대치가 고조하는 중동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갈등의 두 축인 중동의 패권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오가며 양측 모두와 정치, 군사·안보, 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동 현안에 더욱 깊숙이 개입하는 모양새다.
국익을 이유로 이란을 극히 적대하고 사우디를 일방적으로 지지해 입지가 오히려 좁아지는 미국의 고립주의 또는 불개입주의와는 대조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4일 미국의 전통 우방인 사우디를 정상 방문해 전방위로 협력을 논의한다.
양국이 공유하는 교집합은 OPEC+다. OPEC+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를 위시한 주요 산유국의 모임을 일컫는다.
러시아가 사우디와 맞먹는 규모의 원유를 생산하면서 사우디는 국제 유가를 통제하는 데 OPEC 회원국이 아닌 러시아와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국은 또 푸틴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에 맞춰 사우디 국영석유사 아람코의 상장에 러시아가 투자하는 방안, 국부펀드 공동 투자 사업 등을 논의한다.
14일 리야드에서 열리는 사우디-러시아 경제포럼에는 양국 고위 관리와 경제인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10월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된 뒤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한 사우디에서 열린 경제행사에 대표단을 보냈다.
살해 두 달 뒤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카슈끄지 살해의 배후로 몰려 면목이 깎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한 이도 푸틴 대통령이었다.
사우디가 미국의 맹방이긴 하지만 동맹을 언제라도 외면할 수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목격한 터라 러시아와 우호는 사우디 왕실의 '보험' 성격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러시아제 대공방어 시스템 S-400 구매에 사우디가 손을 끊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발생한 사우디 핵심 석유시설 피격을 거론하면서 S-400 구매를 제안했다.
공교롭게 푸틴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한 날 미국은 시리아 주둔 병력을 철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2015년 9월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면서 내전에 개입했다.
미국의 철군과 맞물려 터키 정부가 시리아 내 쿠르드족을 공격하자 그간 미국의 지원을 받던 쿠르드족은 시리아 정부, 러시아와 협력하겠다면서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미국이 실용적 국익을 명분으로 쿠르드족을 사실상 외면하면서 결과적으로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은 더 커지게 된 셈이다.
러시아는 터키, 이란과 함께 중동 최대의 난제 중 하나인 시리아 평화협상을 추진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은 또 사우디 방문에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사우디, 이란 모두와 좋은 관계다"라는 점을 부각했다.
러시아는 이란의 전통적 우방이며,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서명국으로서 이란의 입장을 두둔했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고립 위기에 처한 이란 입장에서도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은 '대미 항전'의 든든한 우군이다. 시리아 내전에도 이란과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의 최대 후원자로 이해관계가 같다.
러시아는 동시에 이란의 최대 적성국이자 중동 아랍권과 적대적인 이스라엘과도 교류가 활발하다. 2008년 양국이 비자 면제 협정을 맺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다.
이스라엘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고 자신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곳에 적대조직인 레바논 헤즈볼라와 적성국 이란이 군사 지원하자 촉각을 바짝 곤두세웠다. 종종 이들을 겨냥해 폭격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가 2015년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뒤 이스라엘은 러시아와 접촉을 늘려 이란을 견제했다.
러시아는 시리아·이란 진영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친선을 적절히 배분하면서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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