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모든 홍콩인 집 갖도록 할 것"…주택공급 확대 발표

입력 2019-10-16 18:17   수정 2019-10-16 18:57

캐리 람 "모든 홍콩인 집 갖도록 할 것"…주택공급 확대 발표
공공주택 1만 채 짓고, 생애 첫 주택담보대출 요건 완화
민간업체 보유한 토지 700㏊ 회수해 주택 공급 늘리기로
'행정장관 직선제' 등 논의 배제…야당·친중파·재계 모두 "실망"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다섯달째를 맞은 가운데 홍콩 행정 수반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민심을 달래기 위한 대대적인 주택 공급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6일 시정연설에서 "주택 문제는 현재 홍콩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이자 사회적 불안의 원인"이라며 "모든 홍콩인이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시정연설은 당초 홍콩 의회인 입법회에서 할 예정이었지만, 오전 11시 시정연설이 시작하자마자 야당 의원들의 항의 시위로 연설이 중단됐다. 결국 시정연설은 이날 오후 녹화된 영상을 통해 TV로 방영됐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서민층 주택 공급을 위해 앞으로 3년간 1만 채의 공공주택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공공주택 건설 비용은 당초 20억 홍콩달러(약 3천억원)에서 50억 홍콩달러(약 7천500원)로 늘리기로 했다.
공공주택은 정부가 보유한 토지를 개발하거나,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가 보유한 토지를 빌려서 지을 계획이다.
대기자 수가 너무 많아 공공 임대주택에 아직 입주하지 못한 서민 등을 위해서는 내년에 두 차례에 걸쳐 임대료 보조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생애 첫 주택 마련에 나서는 사람들의 대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제한도 완화했다.
지금껏 600만 홍콩달러(약 9억원) 이하 주택을 살 때만 주택 가격의 90%까지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800만 홍콩달러(약 12억원) 이하 주택을 사면 90% 담보대출이 가능하다.
또한, 1천만 홍콩달러(약 15억원) 이하 주택을 살 때는 주택 가격의 80%까지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홍콩 정부는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토지회수조례'를 강력하게 적용,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쌓아놓고 개발하지 않은 토지 등을 회수하기로 했다.
토지회수조례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정부가 민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한 법규이다.
캐리 람 장관은 "지난 5년간 토지회수조례를 통해 회수한 토지는 20㏊에 불과했지만, 앞으로 5년간 400㏊를 회수하는 것을 비롯해 총 700㏊의 토지를 회수해 주택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지나 주택을 정부에 기부하는 부동산 개발업체에는 프로젝트 인허가 촉진 등의 혜택을 투기로 했다.
90만 명의 학생에게는 매년 2천500달러(약 38만원)의 교육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의 주역인 젊은 층을 회유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아동 보육시설도 확대해 취학 전 아동 1만 명을 위한 보육시설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장애아 등 특수아동 5천700명을 위한 보육시설도 짓기로 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홍콩은 1997년 주권반환 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폭풍우가 지나면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법치주의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굳건한 기반 위에서 발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6월 초부터 400번 이상의 시위가 벌어졌으며, 시위 과정에서 1천100명 이상이 부상하고 2천200여 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날 시정연설은 95단락에 불과해 1997년 주권반환 후 가장 짧은 시정연설로 기록됐다. 지난해 시정연설은 322단락에 달했다.
이날 입법회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이 공식 철회될 예정이었지만, 야당 의원들의 시정연설 방해로 정회가 되면서 23일로 연기됐다.
이날 캐리 람 행정장관의 시정연설에 대해 홍콩 야당과 친중파 진영, 재계 모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야당은 행정장관 직선제나 경찰 강경 진압을 조사할 독립위원회 구성 등 시위대의 요구 사항 중 어느 것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야당인 민주당의 제임스 토 의원은 "캐리 람은 '평행 우주'에 사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다른 우주에 사는 것처럼 홍콩의 현실에 무지하다는 얘기이다.
홍콩 내 친중파 정당 중 최대 세력을 자랑하는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의 스태리 리(李慧瓊) 주석은 "수개월에 걸친 시위 사태를 종식하고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처가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의원들은 '토지회수조례' 등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이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일부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완화가 투기를 부추기고 부동산 경기 하강 시 서민들의 자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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