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 속에 페루 등 인접국서 혐오 확산 우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베네수엘라의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 국민의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지만, 타국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삶도 순탄치는 않다.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유입이 늘어난 중남미 국가에서 이들을 향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최근 미주기구(OAS)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새 베네수엘라의 경제난과 정치 혼란을 피해 탈출한 이들이 460만 명을 넘어섰다.
이웃 콜롬비아에 160만 명, 페루 90만 명, 미국 42만2천 명, 칠레 40만 명, 에콰도르에 35만 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들어갔다.
이들 국가 중 베네수엘라인을 향한 차별과 제노포비아 사례가 가장 많이 들려오는 곳은 페루다.
최근 페루 야당 의원 에스테르 사아베드라는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베네수엘라인들은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페루 일반 국민의 정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난 7월 페루연구소(IEP)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베네수엘라인들의 이민에 반감을 나타냈다.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율도 높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베네수엘라인 엑소더스 초기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을 두 팔 벌려 수용했던 페루는 이민자 행렬이 끊이지 않자 몇 달 전부터 입국 비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페루의 흉흉해진 민심을 베네수엘라인들도 느낀다.
최근 유엔난민기구(UNHCR)의 조사에서 중남미 전역의 베네수엘라 이민자 중 46.9%가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전 조사의 36.9%보다 비율이 늘었다. 특히 페루에 있는 베네수엘라인 중엔 65%가 차별을 느꼈다고 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은 리마에 사는 베네수엘라인들이 겪은 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소개했다.
한쪽 다리가 없는 베네수엘라 이민자 프레디 브리토가 길을 건널 때 한 택시 운전사가 "베네코(베네수엘라인을 비하하는 단어)는 꺼지라"라며 그를 칠 듯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아내는 미용실에서 일하는데 베네수엘라인에게 머리를 맡길 수 없다고 거부하는 고객들도 있다고 한다.
페루에 최근 베네수엘라인의 외국인 혐오 피해를 접수하는 핫라인이 개설되자 두 주 만에 500건이 접수됐다고 AP는 전했다.
UNHCR의 페데리코 아구스티는 "최근 몇 달 간 (외국인 혐오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며 "주요 원인은 타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베네수엘라인에 대한) 특정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페루에서는 베네수엘라인이 들어온 이후 범죄율이 늘어났다는 공포가 퍼졌다.
그러나 지난해 페루에서 발생한 범죄 중 베네수엘라인들이 저지른 것은 1% 미만이고, 범죄를 저질러 수감된 베네수엘라인도 1만 명 중 5명꼴에 불과하다고 BBC 스페인어판과 AP통신은 전했다.
일각에서는 베네수엘라인의 이민을 까다롭게 한 정부의 정책이 외국인 혐오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비센테 세바요스 페루 총리는 최근 "정부가 외국인 혐오 행위를 부채질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페루 정부는 외국인 혐오 행위를 규탄하며, 자국내 베네수엘라인에 대한 혐오 범죄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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