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휴전 아닌 작전중단' 온도차 속 '동맹 버린' 트럼프 논란 이어질 듯
민주당 "합의 엉터리, 모든 것 내줬다"…공화당 내에서도 비판 기류
美상원은 휴전합의에도 對터키 제재법안 그대로 발의
(워싱턴·서울=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권혜진 기자 = 터키의 시리아 공격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미국 대표단으로 현지에 급파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터키와의 '5일간의 조건부 휴전 합의'를 발표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라고 자평했다.
비슷한 시각,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터키, 쿠르드에 대단한 날"이라며 "전 세계에 대단한 날이다.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라고 '자축'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자축모드'와 달리 당장 터키 측이 "휴전이 아니라 일시적 작전 중단"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는가 하면 '일시적 휴전'을 대가로 미국이 터키가 원하는 걸 다 내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시리아 북동부에 주둔하던 미군 병력 철수 과정에서 불거진 쿠르드 동맹 경시 논란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된 트럼프 행정부의 '불(不)개입·고립주의'도 동맹들에 '트럼프 리스크'라는 불안요인을 남겼다.
일각에서 '절반의 중재', '상처뿐인 중재'라는 박한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민주당은 합의 내용에 대해 "엉터리"(sham)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자축 트윗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이날 펜스 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5시간에 가까운 '마라톤회담' 후 발표한 미·터키 간 합의 내용은 쿠르드 민병대(YPG)가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할 수 있도록 120시간 동안 군사작전을 일시 중단하고, 철수 완료 후 군사 작전이 종료되면 미국이 대 테러 경제제재를 철회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안전지대의 관리를 터키군이 맡기로 한 것은 지난 8월 미국과 터키가 안전지대 설치에 합의한 이후 터키가 요구해온 조건을 미국이 전면 수용했다는 평가다.
이번 합의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승리"라고 자화자찬하는 것과 달리 미 언론들은 터키가 원하는 것을 모두 내줬다며 미국이 아닌 "터키의 승리"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를 상대로 한 터키의 승리'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러시아, 이란과 마찬가지로 터키 대통령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평했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도 "이번 합의는 제재 철회, 'YPG 없는 안전지대 지지' 등 터키가 원하는 것을 줬다"고 지적했다.
또한 쿠르드 측이 이번 '휴전 합의'를 준수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긴 했지만, 미국이 쿠르드 동맹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터키의 시리아 공격을 묵인해놓고 사태가 악화하자 '뒤늦은 수습'에 나서면서 인명 피해 등을 방치했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악시오스는 "쿠르드족은 이제 120시간 이내에 그들의 영토에서 떠나야 한다"며 "게다가 수백명의 쿠르드족이 살해당하고 수천 명이 쫓겨났으며 1천명의 ISIS(이슬람국가의 옛 이름) 포로가 탈출하는 등 이미 심각한 피해가 초래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펜스 부통령은 '시리아에 있는 쿠르드족에게 미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오늘의 합의는 폭력 사태에 즉각적으로 종지부를 찍어줬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즉각 성명을 내고 이번 합의 내용을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합의안을 가리켜 "미국의 외교정책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우리의 동맹과 적들에게 우리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는 위험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들은 또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에게 모든 것을 내줬다"고 평한 뒤,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은 "현명하고 강하며 정신이 온전한 리더십을 가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비판 여론은 공화당 내부에서도 불거졌다.
마코 루비오(공화·플로리다) 상원의원은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것은 휴전이 아니다"라며 쿠르드족 입장에서는 '우리가 너를 죽이기 전에 여기서 나갈 100여 시간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라고 비판했다.
리즈 체니(공화·와이오밍) 하원의원도 "우리가 원치 않았던 군사적 목표를 터키가 달성했다는 것은 어떤 경우든 좋은 상황이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미 상원 역시 펜스 부통령의 합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날 친(親)트럼프계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과 민주당의 크리스 반 흘렌 의원의 주도로 터키 제재 법안을 예정대로 발의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우리는 터키가 시리아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터키를 세게 후려칠 준비가 돼 있다"며 이날 펜스 부통령의 발표가 고무적이긴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을 믿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밋 롬니 공화당 상원의원도 이날 '휴전 합의' 발표 후 열린 상원 본회의 연설을 통해 "오늘의 발표는 승리로 묘사되고 있지만,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며 "갑작스러운 시리아 미군 철수 결정 과정과 그 배경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트럼프 행정부에 직격탄을 날렸다고 의회 전문 매체 더 힐이 보도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미국의 역할에 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휴전 합의가 미국이 쿠르드족을 버렸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이 죽음과 사상자들로 고통받고 있는 순간에도 치욕에 모욕을 더하며 거만하고 경솔하게 말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제 동맹을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쿠르드족을 버린 결정은 우리의 가장 신성한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우리가 쿠르드족에 한 것은 미국 역사에 핏자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교 전문가들 역시 이번 합의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부 동유럽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에블린 파커스 독일 마셜펀드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미국의 힘과 영향력 관점은 물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에도 엄청난 충격을 줬다"며 이를 "자책골"이라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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