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투표권 박탈하자"…伊 집권 오성운동 창립자 제안 '논란'

입력 2019-10-19 20:58  

"노인 투표권 박탈하자"…伊 집권 오성운동 창립자 제안 '논란'
"젊은세대 비해 미래에 대한 관심 덜하고 정치 참여도 떨어져"
현지 정치권은 "검토해야 할 문제" vs "역겨운 제안" 입장 갈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집권당 소속이자 유명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이 노인 투표권을 박탈하자는 취지의 제안을 해 현지 정가에서 논란이 일 조짐을 보인다.
19일(현지시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따르면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의 창립자인 베페 그릴로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노인들에게서 투표권을 회수한다면?'이란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통해 이러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릴로는 이 문제가 현재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제기된 투표 연령 하향 조정과도 결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성운동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 소속 엔리코 레타 전 총리가 최근 투표 연령을 만 16세까지 낮추자고 제안한 것의 연장선에서 노인의 투표권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하원의원 선거는 만 18세, 상원의원 선거는 만 25세가 돼야 투표가 가능하다.
그릴로는 "많은 전문가와 학자, 정치인들이 투표 연령을 낮추자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노인들의 이해관계가 젊은 세대의 그것과 상반될 때 민주주의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는 나이가 들면 젊은 세대에 비해 사회·정치·경제적 미래에 관심을 덜 갖게 되고 어떤 정치적 결정이 미칠 장기 결과를 인내하기도 어려워진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며 "이 경우 우리 사회의 미래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젊은 세대의 의중이 반영될 수 있게 노인의 투표권을 회수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인 유권자는 현재도 많은 수를 차지하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투표권은 영구적인 특권이 아니라 국가 운영을 결정하기 위한 참여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릴로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65세 이상 인구 5명 가운데 1명, 75세 이상 3명 가운데 1명은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정치에 관해 일절 얘기하지 않는다는 2015년 여론조사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울러 젊은 세대 역시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점에서 특정 나이 이상의 노인만을 대상으로 투표권을 거두는 것이 연령에 기반한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릴로는 다만, 투표권이 박탈돼야 할 연령의 구체적인 경계선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탈리아의 정년퇴직 및 연금 수급 연령은 만 65세로, 해당 인구는 이탈리아 전체(6천185만명)의 21.8%인 1천350만명에 달한다.
정치권에서는 그릴로의 파격적인 주장에 대해 일단 절제된 분위기 속에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의 형제들'(FdI) 대표 조지아 멜로니는 "검토해봐야 할 문제"라며 환영했지만, 또 다른 극우 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는 "역겨운 제안"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연정 내부적으로는 이 이슈가 미칠 파장을 고려해 입단속을 하는 분위기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참석 중에 관련 질문을 받은 주세페 콘테 총리는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 의견을 물어본 뒤 그 결과를 보고 검토해보자"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그릴로의 후계자로 현재 오성운동을 이끄는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은 현재까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할 당시 신랄한 정치 풍자로 유명했던 그릴로는 2009년 이탈리아의 부패한 기성 정치 타파를 외치며 컴퓨터 공학자 고(故) 잔로베르토 카살레조와 손잡고 오성운동을 창당한 인물이다.
현재 당권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당내 원로로서 당의 진로를 조언하는 등 대소사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동맹이 갑작스럽게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파기하며 정국 위기를 조성하자 민주당과의 연정을 지지하며 '좌파 포퓰리즘' 내각 출범의 토대를 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lu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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