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불평등·비싼 생활물가 등 불만 잠재
시위 초기 정부 무신경한 대처·강경 진압도 분노 키워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최근 며칠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를 전쟁터로 만든 거센 시위의 발단은 지하철 요금 인상이었다.
유가 인상과 페소 가치 하락을 이유로 한 요금 인상으로 출퇴근 시간대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은 800칠레페소(약 1천320원)에서 830칠레페소(약 1천370원)로 올랐다.
우리 돈으로 50원가량 오른 셈이다. 인상 비율은 4%에 못 미친다.
50원 올랐는데 성난 시위대는 며칠째 거리에 나와 경찰과 맞섰고, 지하철역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칠레 언론들은 지하철 요금 인상이 단지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시위의 도화선은 지하철 요금 인상이지만 그 밑에는 빈부격차와 사회 불평등, 서민층에겐 너무 높은 생활 물가라는 문제들이 거대한 빙산처럼 자리 잡고 있다.
격한 시위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뒤늦게 요금 인상을 철회했지만, 시위가 조금도 잠잠해지지 않았다는 점은 이번 시위가 단순히 요금 인상에 대한 불만 때문만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칠레에선 상위 1%의 부자들이 부의 26.5%를 소유하고 있다. 하위 50%가 2.1%의 부를 나눠 가졌다.
칠레의 올해 최저임금은 월 30만1천 페소(약 49만7천원)이고, 근로자의 절반은 월 40만 페소(약 66만원)로 생활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월 환산액 174만원이나 근로자 평균 월급 295만원(2017년 기준)과 비교하면 훨씬 낮은데 지하철 요금은 서울보다 비싼 것이다.
지하철 요금 인상에 '불평등' 분노 폭발…칠레 시위 더 확산 / 연합뉴스 (Yonhapnews)
실제로 BBC 스페인어판이 인용한 칠레 디에고포르탈레스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칠레 지하철 요금은 세계 56개국 중 9번째로 비싼 수준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저소득층은 월급의 30%를 출퇴근 지하철 요금에 쓰는 경우도 있다.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은 시간대별로 다른데 출퇴근 피크 타임에 가장 비싼 요금을 책정하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민들에게 특히 타격이 크다.
대중교통과 전기, 수도요금 등 공공요금이 너무 자주 오르는 것도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쌓이는 요인이 됐다.
시위대의 뿌리 깊은 분노와 좌절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 정부의 무신경한 대처는 분노를 더욱 키웠다.
이번 시위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이어졌다.
큰 소요사태 없이 이어지던 시위는 지난 18일 글로리아 후트 교통장관의 발표 이후 급격히 폭력시위로 변질됐다.
장관은 요금 인상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 번복은 없다고 못 박았고, 정부의 보조금이 없다면 실제 요금은 두 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환승 혜택 등을 감안하면 요금이 다른 국가 대비 싼 수준이라고도 했다.
시위가 한창이던 18일 저녁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고급 이탈리아 식당에서 평온하게 밥을 먹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상위 1% 정부에 대한 분노는 더 커졌다.
비상사태 선포나 통행금지령 등 정부의 강경 대처도 시위에 오히려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시위는 더욱 과격해졌고 혼란을 틈탄 상점 약탈도 이어지면서 결국 칠레는 근 몇십년간 볼 수 없던 최악의 혼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야당 의원인 가브리엘 보리치는 "정부는 계속 폭력행위를 비판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행동은 폭력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며 "나태와 몰이해, 억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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