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자유 침해' 논란 재점화… 소녀상 전시 중단사태와 닮은 꼴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의 한 영화제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을 보류하면서 일본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영화인들 사이에서 상영 보류에 항의해 다른 영화의 출품을 보이콧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제예술제 아이치(愛知)트리날레가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한 뒤 뜨거웠던 논란이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28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가와사키 신유리(しんゆり)' 영화제 사무국은 이 영화제에서 상영할 예정이던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의 상영을 보류했다.
예산 1천300만엔(약 1억3천993만원)의 소규모 행사인 이 영화제는 전날 가와사키(川崎)시에서 개막해 다음달 4일까지 열린다. 비영리법인 '가와사키 아트'와 가와사키시가 공동 주최하는데, 가와사키시가 예산의 절반 가까이인 600만엔(약 6천458만원)을 부담한다.
영화제 측이 주전장의 상영을 보류한 것은 이 영화가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일본 내 극우세력의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일본에서 개봉한 주전장은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들과 일본 극우 인사들의 목소리를 함께 담은 영화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35) 씨가 다양한 의견을 소개해 관객들이 위안부 문제를 접하게 하겠다는 의도로 연출했다.
영화 속에는 극우 인사의 주장도 담겼는데, 일부가 영화 속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전장'의 배급사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영화제 측의 요청을 받고 지난 8월 5일 영화상영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같은날 영화제 측으로부터 '가와사키시가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화제 측은 이후 지난 9월 배급사 측에 상영을 보류한다는 통보를 문서로 했다. 영화제 사무국 관계자는 교도통신에 "안전면과 운영면의 위험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상영 보류 결정이 알려지자 문화예술계에서는 영화제 측이 일본 정부의 의도에 '손타쿠'(忖度·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함)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편의 작품이 이 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던 '와카마쓰 프로덕션'은 전날 "영화제 측이 표현의 자유를 죽이는 행위를 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자사 작품의 출품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영화제 측이 안전상의 이유로 '주전장'의 상영을 보류하고 다른 예술가가 보이콧을 선언한 것은 최근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하며 다른 작가들이 이 예술제 출품을 취소한 것과 닮은 꼴이다.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지난 8월 초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시작했지만, 일본 정부의 압박과 우익들의 협박을 받은 뒤 '안전상의 이유'를 명분으로 소녀상이 전시된 기획전 전체를 사흘 만에 중단했다.
이후 트리엔날레 참가 작가 중 13팀이 스스로 작품 전시를 중단했고, 시민사회가 거세게 항의해 전시는 지난 8~14일 제한적인 방식으로 재개됐다.
와카마쓰 프로덕션은 성명에서 "이번 문제는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전시 중단, 문화청의 보조금 교부 철회 등 일련의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며 "이런 흐름이 예술가들의 자체 검열과 사전 검열로 이어져 표현의 자유를 빼앗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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