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제' 앞둔 서울 아파트, 매물 품귀·호가 상승 이상현상

입력 2019-11-03 11:31   수정 2019-11-03 12:20

'상한제' 앞둔 서울 아파트, 매물 품귀·호가 상승 이상현상
정부 합동단속에도 10월 서울 아파트값 9·13대책 이후 최대폭 올라
상한제 '공급 부족' 트라우마·양도세 비과세 요건 강화 등도 매물 부족에 영향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홍국기 기자 =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개정안이 지난달 29일부터 시행되고, 대상지역 선정이 임박했음에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부터 정부가 고강도 실거래가 및 중개업소 합동조사라는 '양동작전'을 펼치고 있지만 지난달 서울 아파트값은 9·13대책 이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6일 상한제 대상 지역 선정을 앞둔 정부의 정책 결정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상한제 '예고' 안 통하는 서울 아파트값…지난달 9·13대책 이후 최대 상승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재시행을 공론화한 지난 6∼7월 이후 강남 아파트값은 연초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장세 속에 상한제 시행으로 신축 아파트 희소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일부 '유튜브 전문가'들의 불안 심리 조장이 먹히기 시작하면서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급등했다.
3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값은 전월 대비 0.60% 상승했다. 7월 이후 4개월째 상승한 것이면서 월간 단위로는 9·13대책이 발표된 작년 9월(1.84%) 이후 1년여만에 최대 상승이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는 중소형 아파트 거래가격이 3.3㎡당 1억원을 넘어섰다. 일부 한강 조망이 좋고 인기가 높은 주택형에 한정된 얘기지만 최근 새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상한제 시행의 직접적인 타깃이 될 재건축 단지도 덩달아 상승 중이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전주 대비 0.12% 올랐다. 일반아파트값이 0.07% 오른 것과 비교해 되레 오름폭이 더 큰 것이다.
지난달 말 새로운 상한제 법안이 시행되고, 연이어 6일 국토교통부가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을 선정할 예정이지만 아직은 통계적 안정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의 경우 지난 7월 17억∼17억5천만원에 팔렸던 것들이 지난달 19억6천만원에 거래되며 석 달 새 2억원 이상 올랐다.
전용 84㎡도 7월에는 19억4천만∼20억원 선에 거래됐으나 최근 거래가가 22억5천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계약하고 아직 중도금·잔금도 안 치렀는데 3억원 이상 올라버리니 집주인이 본인도 '싸게 팔게 될까 봐' 걱정해 매물을 못 내놓는다"며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매물이 많아야 하는데 거꾸로 매물이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이 단지 입주자대표회의는 최근 아파트 외벽 도색을 시작했다. 강남지역 대표 재건축 단지가 분양가 상한제 시행 등으로 재건축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외관 정비에 나섰다는 점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현지 중개업소 대표는 "입주민들끼리도 우스갯소리로 '은마아파트는 더이상 재건축 단지가 아니라 일반아파트'라고 말한다"며 "아직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서울시 정비계획수립부터 막혀 있다 보니 상한제까지 시행되면 꽤 오랜 기간 재건축 사업이 어렵다고 보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분양가 상한제 시행 선포에 따른 역풍도 예상보다 덜했다. 부동산114 통계에서 상한제 시행 예고 이후 재건축 아파트값이 하락한 것은 8월 23, 30일 2주 뿐이다.
은마아파트보다 사업 진척이 빠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도 서울시 건축심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재건축 사업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되레 가격도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잠실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부담금 등 중첩 규제에도 불구하고 매수자들이 계속 몰려온다"며 "막대한 유동성이 부동산 외에 갈 곳이 없는 데다 정권에 따라 재건축 규제 정책도 달라졌기 때문에 규제가 풀릴 때까지 계속 기다려보겠다는 심리도 깔린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정부의 합동 단속도 결과적으로 집값 안정에는 가시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서초구 반포동의 중개업소 사장은 "정부의 불시 단속으로 문도 제대로 못 열고 '깜깜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집을 사달라는 매수문의는 계속 걸려와 중개사들끼리도 신기해한다"며 "기존 계약자들은 자금조달계획서 소명 요구로 불안에 떨고 있는 반면 매수 희망자들은 집값이 계속 오를까봐 불안해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비강남 지역도 강남과의 '갭메우기'로 동반 상승 중이다.
마포구 아현동의 중개업소에 따르면 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89㎡는 지난달 말 15억5천만원에 팔렸다. 9월 초 국토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등재된 14억3천만원에 비해 1억2천만원이 뛴 것이다.
전용 59.96㎡도 지난 9월 11억5천500만원에 거래 신고가 이뤄졌으나 10월 말 1억원 오른 12억6천만원에 팔렸다.
아현동은 지난달 정부 합동 현장단속의 첫 타깃이 된 곳이다.
용산구 일대는 '한남3구역' 재개발 과열 수주전까지 겹치며 호가가 강세다.
용산 한강로 벽산메가트리움 전용 84.97㎡는 지난달 초 11억5천만원에 계약된 이후 지난달 말에는 3천만원 높은 11억8천만원에 거래됐다.
한강로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이 지역이 상한제 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 앞으로 공급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고 가격이 오르는 것 같다"며 "18층 고층은 12억원에 사겠다는 매수자가 나타났는데 매도자가 돌연 매물을 거둬들였다"고 말했다.


◇ "매물이 없어요"…분양가 상한제 '공급부족' 우려에 조세정책 영향도 커
다수의 전문가들은 최근 서울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꼽는다.
과거 2007년 분양가 상한제 시행 이후 한동안 약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결국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줄어 가격이 올랐다는 '공급부족' 논리다.
우리은행 안명숙 부동산 부장은 "정부가 상한제 지역을 시군구가 아닌 '동(洞)'별로 지정하겠다고 강조하는 것도 공급부족에 대한 트라우마를 우려한 때문"이라며 "그러나 과거 상한제 시행 기간이 길지 않았고 정권 교체 이후 상한제가 무력화됐다는 '학습효과'가 지금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권 초기의 공언과 달리 신도시 건설, GTX 신설 등 계속해서 굵직한 개발 계획을 쏟아내면서 규제 정책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도 집값 상승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강남구 삼성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이 지역은 고속철도, GTX 등 교통 호재가 집중되는 것은 물론 영동대로 개발 등 지자체 개발계획까지 매머드급 호재가 겹친 셈"이라며 "내년 이후 신도시 등에서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풀리면 집값이 더 뛸 것이라는 불안심리가 추격 매수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 조세 정책으로 시중에 매물이 나오기 어렵게 된 것도 '거래량 감소 속 실거래가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조치 등으로 시중에 나올 수 있는 매물이 제한된 상태인데, 정부가 지난해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요건에 '2년 거주' 의무를 부과하면서 매매와 전월세 물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은 최근 5천가구에 육박하는 입주가 진행되고 있지만 매매가격이 강세를 보이면서 전용 84㎡가 14억원을 호가한다.
고덕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중소형 입주자의 절반 정도가 집주인으로 추정된다"며 "과거에는 새집증후군 우려도 있어서 집주인이 일단 전세부터 놓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2년 거주요건을 채우려고 실입주를 많이 하면서 매물도, 전세도 예년만큼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존 아파트 역시 최근 전세 계약이 만기가 되면 집주인들이 실입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최근 거래되는 집들은 내년부터 비거주 1주택자의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이 축소되면서 2년 실거주가 어려운 사람들이 내놓은 매물이 대부분"이라며 "내년부터 장특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2년 거주를 해야 하니 매물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 서울 집값 6일 상한제 발표가 1차 분수령…추가 대책 가능성은
전문가들은 일단 6일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 선정이 앞으로 서울 집값 향배를 가르는 1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일단 상한제 대상 지역은 단기적으로 재건축, 재개발 추진 단지를 중심으로 상승세를 멈추고 일부 하락 단지도 나올 공산이 크다.
상한제 대상 아파트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통제 가격보다도 분양가가 낮아져 재건축 등 사업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그러나 정부의 동별 상한제 대상지역 지정으로, 상한제에서 벗어난 곳에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주택정책실장은 "지금처럼 주택 매수심리가 꺾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상 지역을 최소화할 경우 '공급 부족 우려가 줄어들었다'는 심리적 안정감보다는 상한제와 무관한 신축 아파트나 상한제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매수세가 몰릴 수도 있다"면서 "정부도 대상지역 선정을 앞두고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추가 대책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현재 "상한제 외에 추가대책을 준비 중인 것은 없다. 연말부터 정부 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한제 시행 이후에도 이내 상승세가 지속할 경우에는 결국 정부가 추가 대책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s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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