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기준 통일해 '스파게티볼 효과' 최소화…제조업 수출·투자 활발해질 듯
RCEP 참여국 중 농수산물 강국 포함…"원재료 수출 기회로 삼아야"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세계 최대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타결되면서 한국 기업의 수출길이 활짝 열렸다.
전기·전자, 자동차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대폭 낮아진 무역장벽을 넘어 15개국으로의 수출이 한층 더 활발해질 뿐만 아니라 인프라 확충처럼 투자 유치 수요가 있는 역내 국가로의 진출도 보다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한국은 RCEP에 참여한 15개국 중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와 양자 FTA를 맺고 있어 시장접근성 등은 양자 FTA를 통해 확보하고, 나라 간 다른 원산지와 통관 규정으로 발생하는 한계는 RCEP로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됐다.
하지만 RCEP 참여국에는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 농산물 강국이나 수산업에 경쟁력이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등이 포함돼 있어 한국 농수산물 분야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4일 정부와 무역 관련 기관 등에 따르면 RCEP은 역내 국가 간 통일된 원산지 기준 적용 등을 통해 양자 FTA 체결 시 발생하는 이른바 '스파게티 볼' 효과를 최소화하는 이점이 있다. 스파게티 볼 효과는 접시 안에서 엉키고 설킨 스파게티 가닥처럼 나라마다 다른 원산지 규정과 통관 절차 등으로 기업이 FTA 혜택을 받기 어렵게 된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번 RCEP에서 참여국 간 통합 원산지 기준을 설정해 기업의 FTA 편의성을 제고하고, 역내 가치사슬 강화 기반 마련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제품 생산 과정에서 역내 여러 국가를 거친 제품도 특혜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게 됨에 따라 참여국 간 가치사슬이 강화되고 미국·중국 등 주요 2개국(G2)을 넘어 신남방 핵심국가들로 교역망을 다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한국 기업은 현재 아세안 등 RCEP 역내국에 지속적 투자를 통해 다양한 역내 생산기반을 확보한 만큼 RCEP 체결은 기존 FTA의 제약을 허물고 FTA의 활용률을 더욱 높이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대외경제연구원은 2017년 2월 발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추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RCEP 협상 참여국들은 이미 양자 간 FTA를 맺고 있어 RCEP으로 인한 무역 창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체결 FTA의 개선 및 규범의 조화 등을 통해 이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협상 참여국은 원산지 규정, 통관절차 및 표준의 간소화와 통일 등을 통해 역내 거래 비용 절감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종별 관세율이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아 어떤 품목이 수혜를 입고 어떤 품목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일지는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일단 업계에서는 역내 수요가 높은 전기·전자,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분야에서 수출과 투자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코트라(KOTRA)는 2015년 1월 내놓은 'RCEP 협상 동향과 참여국별 전략 및 산업계 반응' 보고서에서 "RCEP이 체결되면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등을 생산기지에서 전자, 자동차 등 대규모 산업설비 투자가 필요해질 것"이라며 국내 관련 산업의 진출 또한 함께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이와 함께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잇는 물류, 금융 등 서비스 산업의 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코트라 보고서는 "한국은 이미 RCEP 참여국에 고르게 진출해 있는 상황이지만, 투자 진출 기업 간 유기적인 분업과 협력시스템 구축을 통해 연구개발(R&D), 조달, 생산, 유통, 사후관리(A/S) 등의 프로세스를 보다 전략적으로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무역 관련 연구기관 관계자는 "RCEP은 제조업 분야의 관세 철폐·인하 조치를 통해 대체로 한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수산업 부문은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참가국 중 중국, 호주, 뉴질랜드는 농산물 수출이 많은 나라이고 아세안의 수산업도 글로벌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2017년 2월 '포스트-FTA 농업통상 현안 대응 방안'에서 "RCEP 협상이 타결될 경우 율무, 고구마, 녹두, 팥과 같은 곡물류와 배추, 당근, 수박, 양파, 마늘, 고추, 생강 등과 같은 과채 채소류의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사과, 배, 복숭아, 감, 감귤과 같은 품목은 현재 검역으로 수입이 제한되고 있지만, 향후 RCEP 협상 타결이 검역에 영향을 주게 되면 과일류의 영향도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RCEP 타결 이후 역내 농식품 수출국은 역외 글로벌 가치사슬(GVC)보다 역내 GVC를 더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은 이를 원재료 수출 증대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RCEP 타결로 기업의 새로운 시장 진출 기회를 늘리고 국민의 후생을 증진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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