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4일(현지시간) 테헤란 등 이란 주요 도시에서 미 대사관 점거 40주년을 기념하는 반미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 참여한 이란 시민들은 반미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도로를 행진하면서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변함없는 미국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을 되새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닮은 우스꽝스러운 허수아비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성조기를 밟고 불에 태우는 모습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와 이란 군부 지도부도 집회와 행진에 동참했다.
수도 테헤란에서는 점거 사건의 현장인 옛 미 대사관 터 앞 도로에 대규모 군중이 모여 40년 전 미국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면서 대미 항전을 다짐했다.
이날 집회는 특히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이 일어난 지 꼭 40년이 되는 해인 데다 여느 때보다 미국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한 상황인 만큼 이란 정부도 참여를 독려해 도시마다 수만 명이 참여했다.
이란군 총사령관 압돌라힘 무사비 대장은 테헤란 집회에 참석해 "우리와 미국의 갈등은 이란의 핵, 미사일 탓이 아니라 그들에게 우리가 굴복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졌다"라며 "죽을 때까지 물려고 하는 전갈같은 그들의 적대적 행태를 쳐부수겠다"라고 연설했다.
이란 국영방송은 전국 1천여 도시에서 반미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란에서는 테헤란에 주재했던 미 대사관을 '간첩의 소굴'이라고 부른다.
테헤란 미대사관 점거 사건은 1979년 2월 이란 이슬람혁명이 성공하고 9개월 뒤인 그해 11월 4일 발생했다.
미국이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조를 비호하고 이란 내정을 계속 간섭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 대학생들이 미 대사관 담을 넘어 순식간에 공관을 점거하고 미처 피하지 못한 외교관과 직원 등 미국인 52명을 444일 동안 인질로 억류했다.
미 대사관을 점거한 대학생들은 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 체류하던 모하마드-레자 팔레비 왕의 신병을 인도하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 사건으로 1980년 미국은 이란과 단교하고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유례없는 자국 대사관 점거·인질 사건에 위협받은 미국이 당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을 지원해 이란과 전쟁(1980∼1988년)을 벌이도록 했다는 해석이 나올 만큼 이 사건은 중동 정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동시에 친미 왕정이던 이란이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반미 국가로 급변했음을 선언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드물게 1980년 대선에서 재선하지 못한 것도 미 대사관 점거·인질 사태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이란과 1981년 내정에 다시는 개입하지 않고 주권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알제 합의'를 맺고 인질 사태를 해결한다.
할리우드 영화 '아르고'에서는 당시 캐나다 대사관에 피신한 일부 미 외교관의 탈출 작전을 영웅적으로 묘사했으나,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사건은 미국 외교사에 굴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