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시위 150일…'공세적 진압·투쟁 피로'에 기세 한풀 꺾여

입력 2019-11-05 15:21   수정 2019-11-05 15:27

홍콩시위 150일…'공세적 진압·투쟁 피로'에 기세 한풀 꺾여
복면금지법 시행 한달만에 1천여명 검거…체포자 총 3천332명 달해
中 공안부장, 習-캐리람 회동 배석…강경진압 더욱 거세질 듯
시위 장기화로 '투쟁 피로' 호소…"외로운 늑대 출현" 경고도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5일 150일째를 맞는 가운데 경찰의 공세적 시위 진압과 시위 장기화에 따른 '투쟁 피로'로 인해 시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홍콩 명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9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후 이날까지 시위 과정에서 경찰에 체포된 사람의 수는 총 3천332명에 달한다.
특히 지난달 5일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시행 이후 한 달 만에 시위 체포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 6월 경찰에 체포된 시위자의 수는 97명, 7월에는 211명에 불과했으나, 8월에는 663명, 9월 570명으로 불어나더니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지난달에는 체포자의 수가 무려 1천51명에 달했다.
하루에 가장 많이 체포된 날은 지난달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 시위 때로 284명이 체포됐다.
복면금지법은 청소년의 시위 참여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최근 한 달 동안 시위에서 체포된 16세 이하 청소년은 160여 명에 달해 전체 체포자 중 청소년의 비율이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
민주화 요구 시위가 여섯달째로 접어든 가운데 시위에 참여하는 인원은 갈수록 줄어드는 모습이다.
이달 들어서도 주말 시위 때마다 시위대가 격렬하게 경찰과 충돌하고 있지만, 시위대 인원은 수천 명 수준에 불과해 이전보다 시위 참여 규모가 확연하게 줄었다.
6월 9일 100만 명, 6월 16일 200만 명, 8월 18일 170만 명 등 100만 명을 넘는 집회가 3차례나 열리고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시위도 수차례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줄었는지 알 수 있다.
이전에는 홍콩 도심에 대규모 시민이 운집해 그 세를 과시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시위대가 홍콩 곳곳에서 '치고 빠지기' 식의 게릴라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시위 진압에 나서는 한 경찰은 "시위의 절정기는 이미 지났으며, 이제 하락세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위의 기세가 꺾인 데는 홍콩 경찰의 공세적인 시위 진압과 시위 장기화에 따른 '투쟁 피로'가 맞물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5일 복면금지법 시행과 지난달 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를 거치면서 홍콩 경찰은 이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공세적인 진압 작전에 나서고 있다.
4중전회 후 첫 주말 시위인 지난 2일 시위에서 홍콩 경찰은 시민들이 집회를 개최하자마자 병력을 투입해 해산에 나섰고, 하루 동안 무려 200명이 넘는 시위대를 체포하는 등 전례 없이 강도 높게 대응했다.
지금껏 대형 쇼핑몰 내 시위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을 자제하던 경찰은 지난 주말 시위 때는 비난 여론을 아랑곳하지 않고 홍콩 내 6개 쇼핑몰에 전격적으로 진입, 대규모 검거 작전을 펼쳤다.
이로 인해 평화·이성·비폭력을 주장해 '허리페이'(和理非)로 불리는 온건 시위대는 갈수록 시위 참여를 주저하고 있으며, '용우'(勇武)로 불리는 과격 시위대만 남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용우파 시위자는 "경찰이 집회 초기부터 해산 작전을 펼치면서 허리페이가 참여할 방법이 사라지게 됐으며, 이는 시위 참여 인원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 요구 시위가 여섯달째로 접어들면서 시위의 장기화로 인한 '투쟁 피로'를 호소하는 시위대도 늘고 있다.
'허리페이'를 자처하는 한 시위자는 "우리는 길을 잃은 느낌이며, 투쟁의 피로도 커지고 있다"며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없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이 전날 밤 전격적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면서 향후 홍콩 정부는 더욱 강경한 시위 진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전날 회동에서 시 주석은 람 장관에 대한 신임을 확인하면서 "법에 따라 폭력 행위를 진압하고 처벌하는 것은 홍콩의 광범위한 민중의 복지를 수호하는 것이니 절대 흔들림 없이 견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전날 회동에 자오커즈(趙克志)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이 동석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 공안 부문을 총책임지는 자오 부장이 시 주석의 회동에 동석한 것은 시 주석이 지난 9월 11일 호얏셍(賀一誠) 마카오 신임 행정장관을 만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강조할 때 이후 두 번째다.
이는 시 주석이 홍콩, 마카오 등 일국양제 지역의 혼란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이며, 사태가 악화할 경우 무력개입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자오 부장은 최근 홍콩·마카오 공작협조소조 부조장에 임명된 것으로 전해져 그가 소조 부조장인 여우취안(尤權) 통일전선부장, 장샤오밍(張曉明)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 등을 대신해 홍콩에 강력한 공안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람 장관은 이러한 시 주석의 재신임을 기반으로 더욱 강경한 시위 진압책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복면금지법의 시행 근거인 '긴급법'을 확대 적용해 소셜미디어 등 인터넷의 전면적인 통제나 시위 체포자 구금 기간 연장 등을 추진하고, 사태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계엄령까지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4중전회 직후 "헌법과 기본법에 따라 특별행정구에 전면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완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는 점에서 시위에 동조한 홍콩 공무원의 '숙청', 국가보안법 재추진, 민족주의 교육 강화 등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 정부가 강경 일변도의 정책만으로 일관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시위 사태는 지구전에 들어갔으며, 시위대는 이제 투쟁 의지와 자원 등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며 "하지만 시위 인원의 감소로 과격 시위대만 남게 되면 이들이 '외로운 늑대' 식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홍콩 시위 현장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조종하는 사제폭탄이 터지고, 한 경찰관이 시위자의 커터칼에 베여 목에 상처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과격 시위대가 이 같은 외로운 늑대식 공격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홍콩의 범민주 진영은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만을 고수할 경우 홍콩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를 잃게 될 것이라며 이들과의 대화와 민주화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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