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보도…"시리아 내 영향력 확대전략과 판박이"
러, 미국 배신·철수하는 아프리카·중동서 세력 확장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러시아가 시리아에 이어 리비아 내전에도 개입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반면 미국은 이곳에서도 발을 빼는 형국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지난 6주 사이 200명의 용병을 리비아 내전에 투입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다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현지발 기사에서 그 근거로 러시아 용병 저격수들이 전형적으로 쓰는 손가락 크기의 탄환이 근접 총격에 즉사한 리비아 민병대원의 머리나 몸통에 박혀있는 점을 들었다. 이 치명적 총알은 몸 밖으로 나오는 관통상을 좀처럼 만들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4년 동안 막후에서 금융과 전술적 지원으로 한 리비아 군벌을 지원했으나 이제는 대놓고 개입해 리비아의 미래를 좌우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리비아 내전에 숙련된 저격수뿐 아니라 첨단 수호이 전투기, 미사일 공습, 정밀유도 포격 등을 동원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킹메이커가 되기까지 사용한 교본과 판박이 전술이다.
트리폴리 과도정부의 파티 바샤가 내무장관은 이와 관련, "시리아와 정확히 똑같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미는 군벌은 전직 군 장성 출신인 칼리파 하프타르(75)로 리비아 동부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하프타르는 또한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때론 프랑스의 후원도 받는다.
하프타르의 지지자들은 정치적 이슬람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다른 군벌들을 진압해 권위주의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그를 대안으로 보고 있다.
하프타르는 현 트리폴리 당국을 지원하는 서부 리비아 군벌 연합세력과 5년 넘게 내전을 벌이고 있다.
당초 트리폴리 정부는 2015년 유엔에 의해 세워졌고 공식적으로는 미국 등 서방이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터키만이 유일한 후원국이다.
여기에 러시아 지휘부(크렘린궁)와 긴밀히 연계된 러시아 용병 세력이 새로 개입하고 나선 것은 시리아 내전과 닮은꼴 가운데 하나이다.
러시아 저격수들은 크렘린궁과 연계된 사설 회사로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을 이끈 '와그너 그룹' 소속이라고 복수의 리비아 고위 관료와 서방 외교관들이 밝혔다.
시리아든 리비아든 지역 라이벌 관계인 열강이 개입해 저마다 입맛에 맞는 현지 세력을 후견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하프타르의 뒷배를 봐주면서 리비아의 미래를 둘러싼 협상에서 이미 주요한 발언권을 확보했다는 것이 외교가의 평가다.
시리아 경우처럼 리비아에서도 한때 미국과 힘을 합쳐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싸웠던 현지 파트너들은 미국이 자기들을 버렸다는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유엔은 두 나라에서 평화를 중재했으나 실패했으며, 리비아에 8년간 가한 무기 금수 조치도 한 유엔 특사가 최근 표현하듯 "냉소적인 조크"가 돼버렸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리비아에 걸린 '판돈'은 시리아보다 더 큰 상황이다.
리비아는 미국에서 기름이 많이 나는 텍사스주(州)의 3배 크기로 광대한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으며 내전에도 불구하고 하루 13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이후 일종의 반목하는 도시국가들 형태로 붕괴했지만, 유전에서 나오는 수익과 트리폴리에 있는 중앙은행 덕에 간신히 정부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 중앙은행과 유전 수익을 독차지하기 위해 군벌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리비아 내전은 원시 전쟁과 미래 전쟁이 뒤섞여 있다.
공중에선 터키와 아랍에미리트(UAE)가 미사일로 무장한 드론을 군벌들에 후원해 리비아를 첫 번째 드론 전쟁터로 만들었으며, 지상에선 400명도 안되는 민병대 간의 소규모 전투가 어느 때든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용병의 영향력도 그 숫자에 비해 큰 편이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경우처럼 리비아 내전 개입의 강도를 점차 높이고 있지만 오히려 미국은 대체로 리비아 개입을 꺼린 채 거리를 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심지어 하프타르가 트리폴리 공세를 시작한 며칠 후 그의 "테러와 싸우는 역할"을 칭찬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