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명칭 복원 원하는 주민들 탄원에 투표…'킹' 삭제에 70% 찬성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미국 캔자스시티 당국이 도시의 가장 유서 깊은 도로에 붙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이름을 1년도 채 안 돼 바꾸기로 했다고 AP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1월 당국이 흑인 인권운동가인 킹 목사의 이름을 붙인 도로는 원래 주민들 사이에서는 '파세오'(The Paseo: 넓은 가로수 길)라는 이름으로 불린 16.1㎞ 길이의 큰길이다.
흑인 인구 비율이 높은 캔자스시티 동쪽에 위치한 이 도로에 킹 목사의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되자 인권 운동가들은 킹 목사를 추모하기 위한 수십년에 걸친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며 환영했다.
미국 대도시 가운데 킹 목사의 추모 도로가 없는 곳은 캔자스 시티뿐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게 됐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원래 이름을 고집하는 주민들은 '세이브 더 파세오'(Save The Paseo)라는 이름으로 도로명 복원을 위한 조직을 결성하고, 투표를 통해 도로명을 재결정할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당국에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투표 실시에 필요한 1천700명보다 훨씬 많은 2천857명이 서명했다. 이에 따라 실시된 주민 투표에선 주민의 70% 가까이가 새 도로명을 삭제하는 데 찬성했다.
도로명 변경을 두고 주민들 사이에선 감정 대립이 격해져 지난 3일에는 킹 목사의 이름을 삭제하는 데 찬성하는 주민들이 흑인 교회에서 침묵시위 벌여 논란이 됐다.
킹 목사의 이름을 유지하자는 주민들은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며 비판하고 있다. '세이브 더 파세오' 구성원들이 대부분 백인인 데다 실제 이 도로 주변에 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또 킹 목사의 이름을 삭제하면 캔자스 시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겨 사업이나 관광에도 손해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옛 이름을 되살리자고 주장하는 쪽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주장에 반박하며 자신들도 킹 목사를 존경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추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시 의회가 조례에 따른 절차를 무시한 채 이름을 바꿨다는 점을 지적하며 특히 '파세오'는 캔자스 시티의 첫 대로에 붙은 이름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킹 목사의 이름을 붙이는 데 앞장선 캔자스 시티 시장이자 목사인 이매뉴얼 클리버 하원의원은 지난 3일 도로명 변경을 요구하며 교회로 몰려든 주민들에게 킹 목사의 이름을 지우면 생길 피해를 고려해달라고 당부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캔자스 시티 지부의 버넌 하워드 목사도 "자원도 없고, 멘토링이나 모델링, 직업, 커리어를 위한 모델이나 이미지가 없는 도심지역에서 자라는 흑인 아동들에게 표지판의 이름이 어떤 의미일지 이해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세이브 더 파세오'를 이끄는 다이앤 유스턴은 파세오라는 이름이 "너무나 많은 사람의 마음과 기억 속에 특별한 장소가 됐다"며 도로명 복원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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