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작은 극장용 한국영화…다양한 작품 동시 집필중"
"완전히 한국영화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내면에 쌓여온 통찰 폭발하지 않을까 생각"
"영화산업, 입증된 공식·통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알았으면 "…"여성 감독들 활약 주목"
(오슬로=연합뉴스) 김정은 특파원 = "제 나름대로는 여러 가지 영화를 만들어왔어요. 대중에게 알려진 영화, 인상이라는 것은 단순하기 마련이지만요. 그 점을 더 세상이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박찬욱(56) 감독은 7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의 한 호텔에서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 26년의 영화 인생에 대해 자평하며 이같이 말했다.
박 감독은 이날 저녁 오슬로에서 개막하는 노르웨이의 대표 국제영화제 '필름 프롬 더 사우스 페스티벌'에 참석차 이곳을 찾았다. 그는 이날 개막식에서 '실버 미러 명예상'을 받을 예정이다.
"저는 복수극도 했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같은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도 했고, '아가씨'같은 얘기도 했습니다. 동생과 '파킹 찬스'(PARKing CHANce)라는 그룹 이름으로 단편 영화도 실험적인 작품들도 했고, TV도 해봤고, 영어 영화도 해봤고요. 내 이름을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복수 3부작'을 생각하기도 하고, 좀 단순화되죠. 그래서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저는 좀 더 다양한 일을 해왔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는 차기작으로 가능성이 높은 작품으로는 극장용 한국 영화를 언급했다. "한국 수사 드라마이면서 로맨스 영화"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현재는 극장용 한국 영화를 쓰고 있는데 그 작품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작품도 쓰고 있어요. 동시에 여러 편을 쓰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일을 해보니까 한편을 개봉하고 그다음 작품을 '뭘 하지' 구상하고 쓰기 시작하니까 너무 오래 걸려서 각본을 많이 개발해놓으려고 합니다. 올 한 해, 내년 1월 정도까지는 이것저것 많이 써놓으려고 해요."
그가 현재 쓰고 있는 작품은 영어 영화, 한국 영화도, 드라마, 극장용도 있다. 그가 연출하는 것도, 프로듀싱하는 것도 있다. 형식도 장르도 다양하다.
그는 "저는 그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냥 코앞에 닥친 한편의 작품만 생각한다"면서도 언젠가는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다고 말했다.
"일단 구상 중인 것이 아니라 완전한 형태로 써놓은 작품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꼭 만들고 싶어요. '도끼'라는 작품과 미국 서부극, 그리고 써놓은 것은 없지만 SF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 도전을 이어가는 그도 때로는 생각이 막힐 때가 있다. 그때 그는 사람에게서 답을 찾는다.
"생각이 막힐 때가 당연히 있어요. 하지만, 주변에 좋은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은 큰 어려움 없이 해왔던 것 같습니다. 아내도 항상 좋은 얘기 상대가 되어 주고요. 주변에 좋은 작가라든가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 좋은 사람들, 좋은 친구들, 배우들…그런 사람들하고 얘기하면서 돌파하고 극복합니다. 나는 좀 골방에 앉아서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외로워서 싫고, 자꾸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죠."
올해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대해서는 "예감했다"고 말했다.
"'기생충'은 먼저 보지는 못했는데, 칸 보내기 며칠 전에 (송)강호씨하고 봉 감독하고 우리 셋이 부부 동반으로 술을 한잔하고 환송 파티를 했는데, 뭔가 예감이 이번에 아주 큰 상을 받을 것 같은 예감이 딱 들었어요. 나는 아주 거의 확신에 차서, '이번에는 왠지 그런 것 같다, 그런 때가 된 거 같다'면서 보냈죠. 그 예감이 맞아떨어져서 별로 놀랍지도 않았어요.(웃음)"
그는 그 '예감'의 근거를 이렇게 설명했다.
"'설국열차'와 '옥자'를 지나서, 완전히 한국 영화로 돌아왔을 때, 한국 언어, 한국 사회, 한국인으로 돌아왔을 때, 그동안 그 감독의 내면에 쌓여온 어떤 통찰이 폭발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박 감독은 한국 영화가 100년을 맞은 올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한국 영화 위기론'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다들 말하는 것처럼 투자, 배급사가 포뮬러를 너무 고수하려고 하는, 상업적으로 재미를 본 공식을 반복하려고 하는, 사업하는 사람들이 그러려고 하는 성향은 이해할 수 있는데 영화산업의 특수성은 그렇게 입증된 공식과 통계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좀 더 알면 좋겠습니다."
그는 "지금 젊은 세대에서 재능있는 사람이 더 적을 리는 없고, 그것이 어떻게 발견되고 격려되느냐, 인정되느냐에 따라서 그 재능들이 발현되는 것"이라면서 "우리 세대가 유난히 더 뛰어난 사람들이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박 감독은 그러면서 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 '우리집' 윤가은 감독, 그와 함께 작업을 해왔던 이경미 감독, '메기' 이옥섭 감독을 언급하면서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커지는 것 같아서 그 점을 주목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분명한 캐릭터를 갖고 자기 목소리를 가진 그런 여성 인물들이 주인공인 그런 작품이 언제나 관객으로서도 흥미로웠어요. 만들 때에도 어느 정도 사명감도 조금 있었죠. 너무 적으니까요. 그것은 상업적으로도 개척돼야 할 시장입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잘되고 있잖아요. 아무래도 차별받는 존재는 좀 더 내면적인 복잡성을 갖게 됩니다. 단순 무식한 캐릭터가 아니라 더 섬세한 결을 가진 인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언제나 흥미롭죠."
박 감독은 창작자로서 '충전'을 하는 방법 중 하나로 '사진'을 꼽았다.
"나는 영화감독이면서 사진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인스타그램도 열심히 합니다. 내 일상이 아니라 한명의 사진작가로서 내 작품들이죠. 그렇게 내 사진을 이틀에 한 번씩 올리면서 갤러리처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제 측은 박 감독을 초청해 명예상을 수여하는 동시에 박 감독의 작품세계도 집중 조명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아가씨' 등 그의 작품 10여편이 상영된다. '한국-노르웨이 수교 60주년'을 맞아 주노르웨이 한국대사관과 함께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그는 이번 수상에 대해 "'일단은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요즘 몇년 동안은 계속 이런 식의 상을 받게 되네요. 사람이 스스로는 잘 모르잖아요. 자기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해서 내가 늙었다는 것을 세상이 깨닫게 해주는구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를 알아야 하니까요. 앞으로 몇편이나 더 만들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진짜 은퇴를 앞두고 정말 '라이프 타임 어치프먼트상' 같은 것을 받게 되면 그럴 때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kj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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