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수천명 반정부시위 가세…전직 총리 자택 앞으로도 몰려가
"그들 모두가 도둑…부패한 정치인 물러나고, 전면적 정치개혁 하라"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에 대한 과세로 촉발돼 4주째 이어지고 있는 레바논 반정부 시위에 청년 실업난에 뿔난 학생들도 대거 가세했다.
책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대학생과 고교생 수천 명은 7일 저녁(현지시간) 수도 베이루트와 북부 트리폴리 등의 주요 도시의 거리를 봉쇄한 채 부패한 정치인들의 사퇴와 전면적인 정치 개혁을 통해 청년들과 시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베이루트에서는 정보통신부를 비롯한 주요 정부 건물과 푸아드 시니오라 전 총리 등 부패와 공공예산 전용 등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전현직 각료의 자택 앞에서 학생들이 밤늦도록 연좌시위를 펼쳤다.
일부 시위대는 냄비와 프라이팬 등을 시끄럽게 두드리면서 정치인들에게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구했다.
리마라는 이름의 한 시민은 dpa통신에 "정치인들이 우리의 외침을 듣지 않는 것 같은데, 그들은 아마 그릇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모습을 집에서 지켜보던 상당수 시민도 발코니 등에 나와 그릇을 함께 두드리고, '신이시여, 레바논을 축복하소서'라고 외치며 시위대에 호응했다.
시위대 물결 사이로 "레바논에 젊고, 교양있고, 윤리적이고, 유능한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이라고 적힌 현수막도 나부껴 눈길을 끌었다.
베이루트에서는 한 시위 참가자가 "그들 모두가 도둑"이라고 절규했고, 트리폴리에서는 시위대가 시 정부 건물에 걸려 있던 사드 하라리 총리 등 정치인들의 초상화를 내리고, 대신에 레바논 국기를 게양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동급생들과 어울려 학교 대신 거리로 나온 마르와 엡델 라흐만(16)은 AFP통신에 "우리는 학교에 가고, 열심히 일하고 학위도 따지만 결국엔 하릴없이 (거리를) 서성이고, 집에서 빈둥거리게 될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라흐만 같은 어린 학생들이 시위에 대거 참여한 것은 레바논의 청년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레바논의 청년 상당수가 30%가 넘는 청년 실업률 속에서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일자리를 위해 레바논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아크람 세하예브 임시 교육장관은 이날 TV 기자회견에서 "여러분의 목소리가 접수됐으니, 이제 학교로 돌아가라"고 호소했으나, 이런 당부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7일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발발한 레바논에서는 지난 29일 하리리 총리가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발표한 뒤에도 시위의 열기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나탈리에 아스와드는 "정치 깡패들은 다 내려오고, 새로운 얼굴들이 나와 도둑맞은 공적 자금을 시민들에 되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레바논 시위는 당초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50%나 되는 국가부채와 통화가치 하락, 35세 미만 청년층의 실업률이 무려 37%에 달하는 높은 청년 실업률 등 경제 문제에 대한 국민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해 불붙었다.
그러나, 1975∼1990년까지 이어진 내전 이후 수십 년간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하며 나라를 통치해온 부패한 엘리트 정치인들로 시위대의 분노가 옮겨 가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하지만, 전례 없는 시위의 규모나 강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시위는 눈에 띄는 물리적인 폭력 없이 평화롭게 전개되고 있다는 평가다.
미셸 아운 대통령은 이런 가운데, 의회와 논의를 거쳐 차기 총리를 선임할 예정이지만, 성난 민심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 미지수로 여겨진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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