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위관료 "홍콩 정부, 국가보안법 시급히 제정해야"

입력 2019-11-10 14:19   수정 2019-11-10 14:32

中 고위관료 "홍콩 정부, 국가보안법 시급히 제정해야"
4중전회 후 中 중앙정부 '전면적 통제' 현실화 조짐
2003년 국가보안법 추진했지만, 대규모 시민 저항으로 실패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 고위 관료가 홍콩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홍콩 시위 사태에 대한 중국의 강경책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 장샤오밍(張曉明) 주임은 전날 발표한 6천자가량의 장문의 글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장 주임은 "홍콩은 기본법 23조가 규정한 입법을 아직도 완수하지 못했고, 국가안보에 관한 어떤 기구도 세우지 못했다"며 "이것이 바로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급진적 분리주의 세력이 힘을 얻는 주된 이유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홍콩의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 23조는 국가전복과 반란을 선동하거나 국가안전을 저해하는 위험인물 등에 대해 최장 3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이와 관련한 법률을 제정하도록 규정했다.
장 주임은 "외국 세력은 홍콩과 마카오 문제에 간섭하면서 이들 지역을 중국에서 분리하길 원한다"며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고자 홍콩을 이용하고 있으며,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으로 급진 세력에 보호망을 제공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외국의 간섭에 맞서 국가안보를 지킬 강력한 법규를 제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홍콩 정부와 홍콩인의 시급한 과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장 주임의 이러한 발언은 지난달 말 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 후 더욱 강경해진 중국의 홍콩에 대한 정책 방향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한 4중전회에서는 "홍콩과 마카오 특별행정구의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법률 제도를 완비하겠다"고 결정했으며, 이후 중국 정부는 홍콩에 '전면적 통제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장 주임은 이러한 4중전회의 결정을 반영하듯 홍콩 정부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전면적인 관할권을 강조했다.
그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존중한다면서도 "특별행정구는 중앙정부에 대항할 수 없으며, 중앙정부는 특별행정구 고도 자치에 대한 감독권, 특별행정장관에 대한 지시권, 행정장관과 주요 관료 임면권 등 10대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일국양제는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후 50년간 중국이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되, 홍콩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 것을 가리킨다.



장 주임이 중국 중앙정부의 홍콩 정책을 관할하는 핵심 관료라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 정책을 자문하는 왕전민(王振民) 칭화대 홍콩·마카오 연구소 주임도 최근 비슷한 주장을 펼쳐 홍콩 정부가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홍콩 정부의 국가보안법 시행 노력이 처절한 실패를 맛봤던 점에 비춰볼 때 그 추진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홍콩 정부가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한 것은 지난 2003년 퉁치화(董建華) 행정장관 집권 때였다.
홍콩 의회인 입법회를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퉁 전 장관은 국가보안법 제정을 자신했지만, 2003년 7월 1일 50만 명의 홍콩 시민이 도심으로 쏟아져나와 "국가보안법 반대"를 외치면서 사태는 급반전했다.
50만 시위에도 퉁 전 장관은 국가보안법 강행 의사를 밝혔지만,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이 7월 9일 입법회를 포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하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퉁 전 장관은 예고된 시위가 벌어지기 직전인 7월 7일 성명을 내고 "대중의 의견을 들어 법안을 재검토하겠다"며 국가보안법 2차 심의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어 9월 5일에는 국가보안법 초안 자체를 철회했다.
이후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라는 중국 중앙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홍콩 정부는 아직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 정부가 국가보안법 제정에 실패할 경우에도 중국 중앙정부가 이를 강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홍콩 문제 전문가인 톈페이룽 베이항대 교수는 "국가보안법 제정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홍콩 정부가 이를 추진하기 힘들다면, 중앙정부가 홍콩 기본법 부속서에 국가보안법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를 제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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