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리 前 美유엔대사 회고록…"김정은 '로켓맨' 지칭하면 어떻겠느냐 묻기도"
"도발적 발언도 '최대 압박'에 도움…하노이 결렬이 '최대의 아첨' 전락 막았다"
(워싱턴·뉴욕·서울=연합뉴스) 류지복 이준서 특파원 장재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역대 최강' 유엔 대북제재를 관철하기 위해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을 구사한 것으로 11일(현지시간)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유엔대사를 지낸 니키 헤일리 전 대사는 이날 발간한 회고록 '외람된 말이지만'(With all due respect)에서 유엔 대북제재 결의의 뒷얘기를 소개했다.
앞서 북한은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 실험 도발을 이어갔고, 유엔은 역대 최고 강도의 대북제재 결의를 잇달아 채택한 바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을 뒷받침하는 중국과 러시아까지 동참한 만장일치 결의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이란·시리아 정책에서도 북한을 겨냥한 메시지가 담겼다고 헤일리는 전했다.
◇"대북 제재 결의, 사실상 미·중 양자협상…미치광이 전략"
헤일리는 유엔대사 재임 기간 세 차례 대북제재를 통과시켰다면서 어떤 나라보다 가혹하게 북한을 제재했다고 자평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리 이사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에게 방금 나(대통령)와 얘기했고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전하라. 그들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헤일리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옵션 등도 선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의미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고안한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헤일리는 "북한의 최대 교역국이자 동맹인 중국이 당장의 걸림돌이었다"면서 "안보리 대북제재 협상은 사실상 중국과의 양자 협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정권의 몰락은 북한 주민의 집단 탈출과 중국 유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중국에 이런 위험은 매우 컸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한반도 위기를 피하도록 하겠다'는 논리로 중국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헤일리는 "미·중이 합의하면 안보리는 만장일치가 된다. 단 러시아를 제외하고…"라면서 "먼저 중국과 합의한 뒤 러시아에는 '이런 식으로 가면 러시아만 김정은 정권과 손을 잡는 처지가 돼 국제적 왕따가 될 것'이라고 은근히 압박했다"고 서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도발적인 대북 메시지도 일종의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헤일리는 설명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겨냥해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등의 표현을 사용했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증폭했다.
헤일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적인 발언이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사실 나로서는 '최대의 압박' 전략에 도움이 됐다"며 "이는 키신저의 '미치광이 전략'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7년 9월 유엔총회 연설을 앞두고서는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부르는 게 어떻겠냐"고 본인에게 묻기도 했다고 헤일리는 전했다.
이에 헤일리는 "유엔총회는 교회와 같은 곳이니 하고 싶으면 하라.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미치광이를 다루는 위험에 대해서라면, 문제는 그쪽(김정은)이지 내가 아니다"라고도 언급했다고 헤일리는 덧붙였다.
◇"이란핵합의 탈퇴·시리아 공격에도 대북 메시지"
헤일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란 핵 합의'(JCPOA)에서 탈퇴한 조치에도 북한 정권을 겨냥한 메시지가 담겨있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 합의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국가안보팀은 두 번이나 잔류를 설득해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고 한다. 미국은 결국 2018년 5월 탈퇴했다.
헤일리는 핵 합의에서 탈퇴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에 동조했다면서,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우리가 이란으로부터 받아들인 종류의 합의는 북한으로부터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신호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신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적었다.
헤일리는 "우리가 북핵 위협을 끝내는 데 진지하다면, 우리는 북한이 우리의 레드라인이 무엇인지 알게 해야 했다"고 적었다.
이 과정에서 2017년 8월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 클럽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저녁 자리에서 자신이 핵합의 탈퇴 문제를 놓고 틸러슨 장관과 격론을 벌인 일화도 소개했다.
지난 2017년 4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겨냥한 군사 공격에도 대북 메시지가 담겼다고 헤일리는 설명했다. 당시 아사드 정권이 반군 점령지에 신경작용제인 사린가스 공격을 가하자 미국은 시리아 공군기지를 공격한 바 있다.
헤일리는 "시리아에 가한 피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공격이 시리아·러시아뿐만 아니라 북한과 이란에 보낸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헤일리는 이 공격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러시아, 아사드와 여러 번 했던 것처럼 외교가 작동할 모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그러나 결국 우리의 이익을 지키고 레드라인을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헤일리는 이란·베네수엘라·북한 등 외교 정책 방향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가 있을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런 의사소통이 지속적이고 솔직했다고 자평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신뢰했다고 적었다.
◇"김정은 정권서 최소 300명 처형"
헤일리는 "김정은 위원장이 가족을 포함해 자신의 정적을 숙청함으로써 권력을 공고히 했다. 집권 초반 6년 동안 처형한 숫자가 300명을 훨씬 넘는다"며 북한의 인권 실상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체제에서는 완전한 감시와 규제를 통해 바깥세상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한다"며 "휴대전화는 폐쇄적인 북한판 인터넷으로 막아 놨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은 체제 비판을 하거나 금지된 책이나 언론을 볼 경우 강제 수용소로 보내 고문을 하거나 굶겨 죽이고, 또 죽을 때까지 노동을 시킨다"며 "유엔은 수십만명이 김정은 독재체제의 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용소에서는 강제 낙태를 시키거나 출산한 아이는 살해하기도 하며, 성경을 소지할 경우에도 갇힌다고도 전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7년 미국에 송환된 지 6일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 사건'도 회고했다.
헤일리는 "들것에 고정된 채 비행기 계단을 통해 옮겨진 웜비어를 아버지가 허리를 숙여 끌어안았지만,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며 "웜비어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웜비어) 사건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믿겠다"고 발언했다가 후폭풍에 휩싸인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헤일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악의를 갖고 발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이전에 제재를 해제해달라는 김정은 정권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협상을 결렬시켰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의 압박'이 '최대의 아첨'(maximum flattery)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의구심에 제동을 걸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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