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흥종교계, '왕실에 호감 신자 많아 반대 못해'
기독교만 '정교분리 위반' 반대…서명참가 10분의 1로 감소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선출직인 총리가 예복 차림으로 단 아래에서 공손하게 인사하고 만세삼창을 하는 등 일련의 일왕(天皇) 즉위 관련 행사는 종교적인 색채가 매우 짙다. 5월1일 즉위 이후 진행해온 일련의 나루히토(德仁·59) 일왕 즉위 관련 의식은 14, 15일로 예정된 '다이조사이(大嘗祭)'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새 일왕 즉위 뒤 처음으로 거행하는 추수 감사 의식인 신상제(新嘗祭)를 일컫는 '다이조사이'는 30여개에 달하는 즉위 관련 의식중에서도 가장 종교색이 짙은 의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통종교인 신도와 관련이 깊은 일련의 의식에 대해 "정교(政敎)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며 비판해온 불교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종교계가 이번에는 다이조사이가 코앞에 다가 왔는데도 이례적으로 대부분 침묵을 지키고 있어 눈길을 끈다.
13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종교계의 다이조사이에 대한 이의제기는 기독교 단체 정도다. 일본 기독교협의회(NCC)와 일본복음연맹은 12일 도쿄(東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위헌인 다이조사이에 항의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목사와 신부들은 회견에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수신인으로 반대 서명부를 제출했다.
가톨릭의 오타 마사루(太田勝) 신부는 "다이조사이는 매우 종교적인 의식"이라며 "메이지(明治) 헌법하에서 왕을 아라히토가미(現人神)로 떠받들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차대전 중 기독교 신자에 대한 탄압을 설명하면서 "특별고등경찰로부터 '일왕과 예수 중 누가 위대하냐'는 질문을 받고 '예수'라고 답한 사람이 박해를 받고 쫓겨난 사례가 다수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신앙의 자유'와 '정교(政敎)분리'를 지키기 위해 전쟁 중 탄압을 받았던 여러 신흥종교와 기독교, 불교계가 공동투쟁을 해왔다.
투쟁과정에서는 야스쿠니(靖國)신사가 줄곧 문제가 됐다. NCC와 신일본종교단체연합은 일본유족회 등 신사관리를 국가로 되돌리려는 측의 '야스쿠니지키기(護持)운동'과 총리 등의 야스쿠니 공식참배에 맞서 저항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왕실이 관련되면서 종교계의 공동전선이 무너졌다. 불교계 관계자는 "총리의 이세(伊勢)신궁 참배가 정교분리에 어긋난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왕실의 조상을 모신 이세신궁이라고 보면 비판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흥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한 승려는 "'헤이세이(平成)'를 통해 국민에게 다가가는 왕실상이 확립됐다. 국민·신도 모두 왕실에 호의적"이라고 지적했다.
1970년대 말 연호 법제화 운동에 대한 대응을 놓고 종교계의 공동투쟁에 균열이 생겼다. 찬성파는 "연호는 왕실과 국민을 연결하는 유대"라고 주장했다. 한 신흥종교 관계자는 "연호에 친밀감을 느끼는 신자가 많아 반대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이후 헤이세이, 레이와(令和)로 왕위 교대가 이뤄지면서 "정교분리를 끄집어내 경사스런 일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는 피하고 싶었다"는게 전통불교와 신흥종교 지도자들의 설명이다.
불교와 왕실간의 깊은 인연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중세 이래 종파의 시조 등 고승에게는 조정으로부터 '큰 스승(大師)'이라는 호칭이 수여됐다. 여기에 종파에 따라서는 교단 최고지도자의 혈통주의를 중시하는 전통도 있다.왕실과 비슷한 측면도 있어 경솔하게 비판했다가는 자기 교단에 부메랑이 될 우려가 있었던 셈이다.
이런 사정으로 기독교 혼자 외롭게 투쟁하는 결과가 됐다. 이번에 모인 반대서명도 6천200명에 그쳐 30년전에 비해 10분의 1로 쪼그라 들었다.
호시데 다쿠야(星出卓也) 목사는 왕실의 인기에 더해 "30년이 지나면서 왕 신격화가 갖는 문제 또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적어져 '살아남기 위해 전쟁에 협력했다'는 아픔이 엷어진 점"을 이유로 꼽았다. 그러면서도 "정교분리를 애매하게 둔 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한 사례를 쌓아감으로써 해석개헌이 정착하지 못하도록 반대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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