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폴란스키에 싸늘해진 프랑스 영화계

입력 2019-11-13 18:57  

'성추문' 폴란스키에 싸늘해진 프랑스 영화계
'개인의 삶과 예술은 별개' 폴란스키 지지 佛 영화계 기류 변화
신작 출연배우 인터뷰 줄줄이 취소…영화감독조합, 회원자격정지 추진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여러 건의 성 추문에도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86)가 그동안 프랑스 영화계에서 받은 전폭적인 지지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분위기다.
신작 '장교와 스파이'의 개봉을 앞두고 폴란스키로부터 과거에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다시 이어졌지만, 프랑스 영화계에서 과거와 같이 그를 변호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니스 마탱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이날 개봉하는 로만스키의 '장교와 스파이'에 나오는 주연 배우들의 지상파 방송 인터뷰가 줄줄이 취소됐다.
이 작품은 19세기 유대계 프랑스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된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 은곰상을 받은 작품인 만큼 프랑스에서는 기대작으로 주목받았지만, 주연 배우 장 뒤자르댕의 인터뷰가 개봉 직전에 취소됐다.
극 중에서 드레퓌스 중위를 연기한 배우 루이 가렐의 사전 녹음 인터뷰도 프랑스 공영라디오에서 예정대로 방송되지 않고 폐기됐다.
폴란스키의 부인으로, 역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에마뉘엘 세니에의 인터뷰도 대부분 취소됐다.
파리에서는 '장교와 스파이'의 상영을 막으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12일 시사회가 열린 파리 르 샹포 극장 앞에서는 여권운동가들이 "폴란스키는 성폭행범"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봉쇄시위를 벌였다.
이런 흐름은 모두 폴란스키의 과거 성범죄 의혹이 최근 다시 제기됐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발랑틴 모니에는 8일 일간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0대 때 폴란스키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한때 배우 겸 모델로 활동했던 모니에는 40여년 전인 1975년 스위스 그슈타트의 폴란스키의 별장에서 성폭행 당했다면서 그의 새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피해 사실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모니에는 인터뷰에서 특히 "프랑스의 예술계와 지식인이 무조건 폴란스키를 지지해왔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프랑스 영화감독 크리스토프 뤼지아가 과거 자신이 10대 초반일 때 성추행을 일삼았다고 폭로한 여배우 아델 에넬도 모니에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동안 폴란스키의 성범죄 전력이 불거질 때마다 '개인의 삶과 예술은 별개'라는 태도로 영화감독 폴란스키를 변호해온 프랑스 문화계의 기류도 이번에는 사뭇 달라진 셈이다.

원로배우 카트린 드뇌브, 칸 영화제의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 등 폴란스키의 오랜 옹호자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프랑스영화감독조합(ARP)은 폴란스키의 회원자격 정지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조합은 "모든 성폭행·성희롱 피해자를 지지한다"라면서 성범죄로 유죄를 받은 회원은 제명하고 성범죄 수사가 진행 중인 회원은 회원자격을 정지하는 쪽으로 조합 정관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인인 폴란스키는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3세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돼 미국 검찰에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유죄 인정 조건부 감형협상(플리바게닝)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미국을 떠나 40년 가까이 도피 중이다.
미국은 폴란스키를 여러 차례 자국으로 소환해 기소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스위스에서도 또 다른 성폭행 혐의로 피소됐다가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폴란스키는 결국 오스카상(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에서 작년에 영구 제명됐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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