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수호' 메시지 전면에…야당 아닌 중국과 대결 구도로
'경제 대통령' 외치는 한궈위 고전…'샤이 한궈위' 표심 기대
대만 총통 선거전 본격적으로 달아올라
(가오슝=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샤오잉(小英) 둥쏸(凍蒜)! 샤오잉 둥쏸!"
16일 밤 대만 남부 항구 도시 가오슝(高雄) 도심의 집권 민주진보당 대형 유세 현장.
행사가 막바지로 향해가는 가운데 주인공인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중앙 무대가 아니라 유세장 뒤편에서 깜짝 등장했다.
차이 총통이 환호하는 지지자들의 손을 잡아주면서 중앙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가자 유세장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요란한 부부젤라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10만여명의 지지자는 '차이잉원 당선'이라는 뜻의 구호인 '샤오잉 둥쏸'을 연호했다.
'샤오잉'은 차이 총통의 이름 가운데 한 글자를 따서 친근하게 부르는 별명이다. '얼어붙은 마늘'이라는 뜻의 '둥쏸'은 현지어로 당선(當選)과 발음이 비슷하다.
민진당의 이번 초대형 유세를 시작으로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만 총통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달아올랐다. 대만 대선은 내년 1월 11일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치러진다.
부총통 후보로 지명된 라이칭더(賴淸德) 전 행정원장, 쑤정창(蘇貞昌) 행정원장, 천쥐(陳菊) 총통부 비서장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이날 민진당의 유세는 중국에 맞선 '주권 수호 총궐기 대회'를 방불케 했다.
중국의 전방위 압박에 오히려 지지도를 회복한 차이 총통이 이번 대선을 민진당 대 국민당의 대결이 아니라 중국 본토와 대만의 대결 구도로 끌고 가려는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앙 무대에 양측에 세로로 걸린 대형 현수막에는 '대만 보위(保衛台灣)'와 '가오슝 해방'(光復高雄)라는 문구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가오슝 소재 국립중산대학의 장진혁 정치학연구소 교수는 "홍콩 시위대가 주로 쓰는 구호인 '광복홍콩'(光復香港)을 연상시키는 '광복 가오슝' 구호를 내건 것은 홍콩 시위 상황을 최대한 선거 국면에 활용하겠다는 민진당의 선거 전략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연단에 오른 차이 총통은 홍콩의 위기를 직접 거론하면서 중국 본토와 거리 두기를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의 홍콩을 보라. 대학은 전쟁터처럼 변하고, 어떤 이들은 숨지고 실종이 되는데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등생 아들의 손을 잡고 유세장에 나온 회사원 황(黃·46)씨는 "우리는 올바른 국가관을 가진 총통을 뽑아야 한다"며 "심지어 어떤 후보는 대만이 독립된 국가라는 사실조차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야당 후보인 한궈위 가오슝 시장도 최근부터 '장기 휴가'를 얻어 본격적으로 총통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전통적으로 중국 본토와의 '양안 관계'를 중요시하는 국민당 후보인 한 시장은 대만에서 중국 경계심이 고조되면서 효율적인 선거 전략을 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들이 돈을 잘 벌게 해 주겠다'는 단순 명료한 메시지로 작년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의 20년 텃밭인 가오슝 시장에 당선되면서 혜성같이 중앙 무대에 등장했던 한 시장은 대선에서도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설파하고 있다.
한 시장은 16일 신베이(新北)시 국민당 국회의원 후보 유세 지원에 나서 "최근 수년 동안 대만 경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대만은 아시아 네 마리의 용 중에서 가장 국민소득이 낮은 곳이 됐다. 민진당은 도대체 어떤 성적표를 받아 들었느냐"고 차이잉원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대선이 안보 정국에 휩싸이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한 시장은 "안보와 경제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라며 "다음 총통은 안보만 입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민이 좋은 날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대선일이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가운데 선거 정국은 차이 총통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 이슈'가 대만 대선 정국을 집어삼키면서 불과 1년 전인 작년 11월 지방 선거에서 한 시장의 열풍을 등에 업은 국민당에 참패해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았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연초 대만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초강경 발언을 내놓는 등 중국이 군사·외교·경제 등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대만인들 사이에서 '망국(亡國) 위기감'을 확산시키면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회복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6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정치적 위기가 심화하자 대만에서 반중 정서가 한층 커지면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급상승하는 추세다.
지난 5일 대만 빈과일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이 총통은 42.7%의 지지율로 25.7%에 그친 한 시장을 앞서갔다.
차이 총통은 올해 상반기까지는 작년 지방선거에서 국민당 압승이라는 파란을 연출한 한 시장에게 내내 열세였는데 지난 8월부터 본격적으로 한 시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는 차이 총통이 홍콩 사태의 정치적 수혜자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 교수는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민진당이 대선 승리는 물론 국회의원 과반 달성 가능성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대만 정치 문화에서는 진보 성향의 민진당이 총통에 당선되더라도 국회는 국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대만에서는 민진당과 국민당이 주도하는 양당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아직 뚜렷이 표심을 밝히지 않는 중도·부동층의 선택은 총통 선거의 막판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난 5일 빈과일보의 여론조사에서도 무응답자는 30%가 넘었다.
국민당은 무응답층 가운데 상당수가 한 후보를 지지하지만 뜻을 밝히기를 주저하는 '샤이 한궈위'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여론조사에서도 보수 성향 후보의 지지율은 실제 투표율보다 낮게 조사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가오슝의 류허(六合)야시장 노점에서 한궈위 후보의 캐릭터 인형과 열쇠고리 등 '한궈위 굿즈'를 파는 쑨(孫)씨는 "한 시장이 현재는 유리한 상황은 아니지만 승리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본다"며 "한 시장이 당선되고 양안 관계가 안정되어야 우리 같은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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