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당시 조선인 피해 인지…일본인 외 피해 간접 언급 가능성
태국선 어린시절 함께 자란 사촌동생과 재회…개인 통역사로 활약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이 19∼26일(현지시간) 태국과 일본을 차례로 방문하는 가운데 현지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이목이 쏠린다.
국제적인 관심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방문 기간 던질 메시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동안 핵무기를 '인류 사회의 악'이라고 규정하고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해왔다.
핵무기 사용을 문제 삼은 이전 교황들과 달리 핵무기의 단순 소유도 규탄받아야 한다는 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이다.
이에 따라 히로시마 등의 방문 때 내놓을 메시지도 이런 톤과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AP 통신은 교황이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원폭 생존자를 만나 '핵무기의 전면적인 금지'를 강조하는 입장을 재천명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가톨릭계에서는 교황이 핵무기 금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원자력발전 금지를 언급해주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일본 나고야 교구장인 마츠우라 고로 주교는 환경보호를 지속해서 강조해온 교황이 원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3박 4일간의 일본 방문 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피해자와도 만날 예정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관련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지 가톨릭계는 후쿠시마 사태와 관련해 2016년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원전을 전면 폐기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한국으로선 교황이 원폭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에서 재일조선인들을 언급할지가 주목받는 대목이다.
연합군 일원인 미군의 원폭 투하 당시 일본인 외에 많은 수의 재일조선인도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일각에서는 교황이 해외 순방 때 방문지의 외교적 입장을 두루 고려해 발언하는 전례에 비춰 재일조선인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일본인 외에 '다른 민족'도 상당한 피해를 봤다는 식의 간접 표현을 사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 가톨릭계는 교황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교황청 외교 파트 고위 관계자들에게 원폭 당시 재일조선인 피해를 상세히 설명했고, 교황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문제를 둘러싸고 급속히 악화한 한일관계를 겨냥한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이는 민감한 정치·외교적 현안인 만큼 언급이 이뤄진다면 공개적인 자리보다는 아베 신조 총리나 나루히토 일왕 등과의 비공개 면담 때를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교황은 일본에 앞서 첫 순방지인 태국에서 사촌 여동생인 아나 로사 시보리(77) 수녀와 재회할 예정이라고 18일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교황과 시보리는 어릴 때 아르헨티나에서 함께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시보리는 선교 활동을 위해 1966년부터 태국에서 거주해왔다. 그는 20∼23일 교황의 태국 방문 기간 공식 통역사로도 활약한다.
교황은 불교 신자가 다수인 태국에서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과 총리, 불교 최고 지도자 등을 만나 평소 강조해온 종교 간 화합을 도모할 계획이다.
교황이 2013년 즉위한 이래 아시아 순방은 이번이 4번째다. 이전에 한국과 스리랑카, 필리핀, 미얀마,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바 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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