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이후 100년, 기내식 이야기

입력 2019-12-08 08:01  

샌드위치 이후 100년, 기내식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1919년 런던과 파리를 운항하는 핸들리 페이지 트랜스포트가 승객들에게 판매한 샌드위치 박스에서 시작된 기내식의 역사가 100년이 됐다.
상류층만 비행기 여행을 할 수 있던 1960∼1970년대 기내식은 놀랍도록 호화로웠고, 1980년대에는 저비용항공사가 기내식을 돈을 주고 사 먹는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이제는 요리사가 비행기에 동승해 서비스한다.



◇ 낮은 기압과 습도…단맛·짠맛 못 느껴
비행기 안에서 먹는 기내식이 맛없다고 느낀다면 그건 요리사의 탓이 아니다.
기내식은 공항과 가까운 곳에 있는 케이터링 업체 주방에서 만들어 냉장 보관 상태로 비행기에 실은 뒤 비행기 내부 부엌인 갤리에서 데워 승객에게 제공된다. 부엌에서 바로 만들어 내는 음식과 비교할 수가 없다.
고도가 높아 기압이 낮고 건조하며 진동과 소음이 가득한 기내에서는 우리의 미각과 후각, 소화 기관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내식을 만들 때는 간을 조금 더 세게 한다. 기내 환경은 특히 신맛이나 매운맛보다 단맛과 짠맛을 잘 느낄 수 없게 한다. 그래서 기내식이 맛있다는 건 지상에서 먹는 음식보다 훨씬 달고 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감칠맛은 낮은 기압과 습도에서도 사람이 느끼는 정도가 변하지 않으며, 소음 속에서는 오히려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음료 중 감칠맛을 내는 토마토 주스가 좋은 선택인 이유다.
움직임이 거의 없이 오랜 시간 좁은 공간에 앉아 있다 보니 소화를 돕기 위해 고기 등 재료는 더욱더 부드럽게 조리한다. 소스를 조금 더 되직하게 하는 것도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음식이 최대한 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다.



◇ 맛보다 위생과 안전
이스탄불에서 터키 항공 기내식을 담당하는 터키 도앤코(Turkish Do & Co)의 주방을 찾았다. 이곳은 24시간 풀 가동하면서 하루 900∼1천개 항공편, 20만명분의 기내식을 만들어 낸다.
터키 항공은 영국 항공 서비스 조사기관 '스카이트랙스'(Skytrax)가 선정하는 2019년 최고의 기내식 순위에서 5위(비즈니스 클래스)와 7위(이코노미 클래스)에 올랐다.
단순히 견학하는데도 흰색 가운을 입고 머리카락은 한올도 빠져나오지 않도록 위생모를 썼다. 수염을 기른 사람은 마스크까지 착용했고, 신발에 덧신을 신고 반지와 귀걸이, 시계 등 액세서리를 모두 뺀 걸 확인한 뒤에야 주방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샐러드 같은 찬 음식을 만드는 곳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온도가 낮았고, 뜨거운 음식을 만드는 곳에서는 고기를 굽는 열기와 수증기로 꽉 차 있었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만큼 작은 터키 만두 만트를 빚고, 양념해 요리한 밥을 포도잎으로 싸는 사르마를 만드는 손길이 바빴다.



사실 기내식에서 중요한 건 맛보다는 위생과 안전이다. 1975년 도쿄에서 파리로 가는 일본항공 여객기에서 승객 196명과 승무원 1명이 식중독에 걸렸던 사건이 벌어졌다.
조리사가 상처 난 손으로 음식을 만들었고, 10시간 넘게 실온에서 보관된 햄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다행히 경유지에서 교대한 조종사는 미리 식사를 하고 탑승해 기내식을 먹지 않아 운항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이 사건은 조종사가 승객과 다른 기내식을 먹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기장과 부기장이 서로 다른 음식을 먹는 것도 같은 이유다. 1990년대 초까지 이런 기내식 사고는 이어졌다.



◇ 일반석에서도 웰컴 드링크를
저비용항공사를 중심으로 유료 기내식이 확산하는 한편, 일반 항공사는 상위 클래스 승객을 위해 요리사를 동승시키거나 음식을 미리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내식 서비스도 양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델타항공은 지난 11월부터 장거리 국제선 일반석(메인 캐빈) 승객에게도 웰컴 드링크와 따뜻한 수건, 메인 음식과 디저트가 따로 나오는 비스트로식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이뤄지는 서비스를 이코노미 클래스로 확대한 것이다.
델타항공의 기내식을 담당하는 LSG 스카이셰프에서 새로운 기내식을 미리 맛봤다. 우선 비행기가 이륙하면 복숭아 퓌레를 넣은 스파클링 와인 '벨리니'가 웰컴 드링크로 나온다.
알코올이 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주요리는 물론, 애피타이저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날은 구운 가지를 갈아 섞은 후무스와 이탈리아식 햄인 코파와 토마토, 모차렐라 샐러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메인 요리로 선택한 닭가슴살 요리는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LSG 메뉴 개발 부서 안형일 대리는 "고온에서 조리하는 일반적인 조리법이 아닌 특정 일정 온도로 유지하며 조리해 부드러운 식감과 육즙, 장시간 마리네이드한 양념의 풍미가 한층 올라갈 수 있게 했다"고 소개했다.
파스타에는 생바질과 파르메산 치즈가 들어갔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디저트로 따로 나왔다. 사각형의 쟁반 하나에 모든 음식이 담겨 나오던 방식을 벗어난 것이다.



테이블 매트와 곡선이 들어간 쟁반, 커트러리도 새로 디자인했다.
델타항공 김성수 한국 대표는 "개선된 서비스로 요금을 올리거나 추가 요금을 받지는 않는다"며 "수십년간 해왔던 프로세스를 재검토하는 기회이자, 고객 만족을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승무원들이 고안해 시작된 서비스로, 스스로 긍지를 가질 만하다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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