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내용 중 일부만 발췌해 반격…"대가는 없었다" 반복 강조
애플 공장 가는 길에 세 차례나 언급…"우리가 이겼다", "끝났다" 주장
(서울·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정성호 특파원 =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옳은 일을 하라고 말하라. 이게 미국 대통령으로부터의 마지막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필로 쓴 '반격 메모'가 20일(현지시간) 카메라에 포착됐다. 굵은 마커펜으로 큼지막하게 대문자로 휘갈겨 쓴 메모지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메모지를 들고 기자들 앞에 섰다.
"준비됐나? 지금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나?"라고 외친 그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메모지에 적힌 내용을 힘차게 읽어내려갔다.
그는 팀 쿡 애플 CEO와 함께 텍사스 오스틴의 애플 공장으로 가기 위해 전용헬기인 마린원에 탑승하려던 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읽어내려간 내용은 이날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가 미 하원 탄핵조사 공개 청문회에서 증언한 내용 중 한 부분이다.
선들랜드 대사는 청문회에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인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대가)를 인정하는 폭탄 증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그러나 선들랜드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에 자신과 한 통화에서는 "(우크라이나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혀 논란의 여지를 열어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이 부분을 포착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선들랜드 대사와 9월에 한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선들랜드 대사의 전반적인 증언은 트럼프 대통령에 상당히 불리한 것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유리한 일부 대목만 인용해 '딴소리'를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격은 텍사스로 향하는 마린원 안에서도 이어졌다.
선들랜드 대사는 청문회에서 9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와 관련, "(통화는) 매우 짧았고 갑작스러운 대화였다. 그(트럼프)는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항상 기분이 좋다. 그가 말한 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선들랜드 대사에 대해 "나는 그를 아주 잘 알지는 못한다. 그와 대화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좋은 사람인 것 같기는 하다"라고 거리를 뒀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마이클 코언이나 로저 스톤을 포함해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그를 아주 잘 알지는 못한다'는 뜻을 담은 화법을 종종 썼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은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폭로했고, 로저 스톤은 2016년 미 대선 당시 '비선 참모'로 활동한 정치컨설턴트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관련 조사를 받고 있다.
선들랜드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위원회에 100만 달러를 기부한 고액 기부자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들랜드 대사와 거리를 두면서도 그의 증언은 "환상적(fantastic)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선들랜드 대사는 왜 이 부분을 자신의 모두 발언에 넣지 않았을까"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민주당)은 이제 끝내야 한다. 대가는 없었다. 대통령은 결코 잘못 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격은 오스틴에 도착해서도 이어졌다.
그는 "오늘 우리가 이겼을 뿐만 아니라 그것(탄핵조사)은 끝났다"고 자평한 뒤 탄핵조사를 가리켜 "이것은 거짓말이며 불명예다. 우리나라에 수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무능하다"고 비난하면서 "하원의장으로서 형편없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청문회를 촉발한 내부고발자에 대해서는 "정치적 정보원"이라고 부르면서 "정보기관 감사관은 그러한 고발이 진행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더힐은 보도했다.
스테파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선들랜드 대사의 오늘 증언은 상당 부분 확실한 사실보다는 그의 추정과 생각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나 백악관 회담이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수사)발표를 받는 것과 연계돼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언했다"고 밝혔다.
한편, 선들랜드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에 "우리는 일에 있어 전문적이고 화기애애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면서 "나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20번가량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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