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만에, '초법적 처형' 인권 문제 지적하는 UN 전문가 등 접촉하자 '발끈'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정적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이 19일 만에 '마약과의 전쟁' 지휘관에서 해임됐다.
25일 일간 필리핀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로브레도 부통령을 '마약퇴치 범정부 위원회'(ICAD) 공동 위원장직에서 해임했다고 살바도르 파넬로 대통령궁 대변인이 밝혔다.
ICAD는 마약사범 단속과 처벌, 마약 예방 캠페인, 재활 등 마약과 관련한 모든 분야를 총괄하는 기구로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강력하게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 사령탑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로브레도 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은 직후인 지난 5일 로브레도 부통령을 ICAD 공동 위원장으로 임명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로브레도 부통령은 거부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다음 날 전격 수락했다.
그러나 로브레도 부통령이 부임 후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 재판 없이 용의자를 사살하는 '초법적 처형' 등 인권침해 문제를 지적하는 유엔 마약 전문가와 주필리핀 미국 대사 등을 접촉하자 두테르테 대통령이 발끈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19일 "로브레도 부통령이 외부 세력에 민감한 안보 관련 정보를 무심코 흘릴 수도 있는 '덜렁이'(scatterbrain)"라며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파넬로 대변인은 "로브레도 부통령의 행위는 우리나라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ICAD 공동 위원장직을 두테르테 행정부가 수행한 방법을 공격하는 플랫폼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ICAD 공동 위원장을 맡은 지 2주나 지났지만 어떠한 새로운 (마약퇴치) 프로그램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야권인 리사 혼티베로스 상원의원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로브레도 부통령의 정치적 기반을 약화하려고 ICAD 공동 위원장직에 임명한다고 통보했는데 로브레도 부통령이 덜컥 받아들이면서 역풍을 맞았고 이후 로브레도 부통령이 무엇인가를 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혼티베로스 의원은 또 "두테르테 행정부가 자기 덫에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로브레도 부통령도 25일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성명을 내놓을 예정이다.
필리핀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을 따로 선출하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이 상반될 수 있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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