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당국의 안이한 대처가 여성살해 부추겨"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주장한 멕시코 여성이 법원이 남편을 석방한 지 얼마 안 돼 살해되는 일이 발생해 멕시코가 들끓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멕시코 언론에 따르면 아브릴 페레스(49)라는 여성이 지난 25일 멕시코시티에서 차를 타고 가다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함께 타고 있던 14살, 16살 두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살인청부업자로 추정되는 용의자는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유족과 지인들은 페레스의 남편이 배후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페레스의 남편은 아마존 멕시코법인 CEO를 지낸 후안 카를로스 가르시아로, 둘은 이혼과 양육권 다툼을 벌이는 중이었다. 페레스 역시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기업 임원이었다.
남편 가르시아는 지난 1월 아내가 잠든 사이 야구 방망이로 때려 입건된 바 있다. 페레스는 살인 미수라고 주장했고, 가르시아는 구속됐다. 그러나 이달 초 법원이 가정폭력으로 혐의를 낮춘 후 가르시아의 보석을 허용했다.
페데리코 모스코 곤살레스라는 이름의 판사는 가르시아가 정말로 아내를 살해하려 했다면 잠든 아내를 충분히 살해했을 것이라며 살해 의도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전에 여성 환자를 성폭행한 의사도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한 적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레스가 살해된 2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이었다. 멕시코에서도 당국의 여성폭력 대책을 요구하는 거센 시위가 펼쳐졌다.
여성단체들은 당국의 안이한 대처가 여성살해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멕시코는 중남미에서도 여성폭력이 심각한 국가로 꼽힌다.
일간 엘우니베르살에 따르면 지난해 멕시코에선 3천750명의 여성이 '페미사이드'로 희생됐다. 하루에 10명꼴이다. 페미사이드(femicide)는 성폭력 살인이나 증오 범죄 등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사건을 가리킨다.
멕시코 통계청에 따르면 15세 이상의 여성 중 43.9%가 남자친구 등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최근 '성폭력 경보'가 발령됐다. 성폭력 경보 상태가 되면 당국은 치안 강화 등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멕시코 32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19개에 성폭력 경보가 발령된 상태다.
그러나 25일 여성시위에 참여했던 발레리아 아레발로(18)는 AFP통신에 "(멕시코시티 인근) 멕시코주에선 4년째 경보 상태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성들이 계속 죽어나간다"며 실효성 없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날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페레스 피살이 "안타깝고 비난받을 만한 사건"이라며 사법권이 올바르게 행사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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