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거성 뒤 핵만 남은 뒤에도 행성 거느려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태양과 같은 별은 수소를 모두 태우고 나면 덩치가 수백배 더 큰 적색거성이 되며 인근 행성들을 잡아먹는다. 태양의 경우 앞으로 50억년 안에 이렇게 돼 수성과 금성은 물론 지구까지도 위협하게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색거성 뒤에는 외곽이 모두 날아가고 핵만 남아 백색왜성이 되는데 이때도 가까이에 거대 행성을 거느리고 있을 수 있다.
태양계의 먼 미래인 셈인데, 우리 은하에 이처럼 백색왜성이 주변에 거대 행성을 가진 행성계가 많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과 달리 좀체 관측되지 않았다.
그러나 약 1천500광년 떨어진 게자리에서 처음으로 이런 행성계가 발견돼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최신호를 통해 발표됐다.
유럽남방천문대(ESO)에 따르면 영국 워릭대학 보리스 겐시케 교수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파라날 천문대의 초거대망원경(VLT)의 X-슈터 분광장비로 'WD J0914+1914'를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연구팀은 '슬론 디지털 전천탐사'(SDSS)로 관측된 약 7천개의 백색왜성을 검토해 별빛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이전에 전혀 관측되지 않은 화학원소 양을 가진 백색왜성 하나를 찾아내 집중 분석을 했다.
그 결과 수소와 산소, 황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런 원소들이 별이 아닌 별을 휘감고 있는 가스 원반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WD J0914+1914에서 포착된 수소와 산소, 황의 양은 해왕성이나 천왕성 등 처럼 얼음을 뒤덮인 행성의 대기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데, 거대 행성의 대기가 증발하지 않고는 이런 원반이 형성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얼음으로 뒤덮인 거대 행성이 뜨거운 백색왜성을 가까이 돌면서 별의 자외선 방사로 외곽층이 날아가고 일부 가스가 원반에 남게 됐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실제 관측 결과와 이론 모델을 종합한 결과, 문제의 백색왜성은 작지만 태양온도의 5배인 2만8천도에 달하고 얼음으로 덮인 거대 행성은 별의 두 배에 달하며 10일 주기로 별을 돈 것으로 분석됐다.
또 가까이서 별의 고에너지 광자에 노출되다 보니 행성의 대기는 대부분 날아가고 일부는 초당 3천t의 분량으로 별 주변 원반에 쌓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행성은 현재 약 1천만㎞ 거리를 두고 별을 돌고 있는데, 이는 별 반지름의 15배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다. 적색거성일 때와 비교하면 별 안에 있는 것이다.
연구팀은 거대 행성의 이런 위치는 WD J0914+1914가 백색왜성이 된 뒤 다른 행성과의 상호 중력장용으로 현재의 자리로 오게 됐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행성 이외에 다른 행성이 더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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