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암 연구소 등 공동 연구, '브리티시 저널 오브 캔서'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주요 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발암 위험이 커진다. '종양 억제 유전자(tumor suppressor genes)' 또는 '종양 유전자(oncogenes)'로 통하는 이들 암 유전자는 원래 암 발생을 막는 데 관여한다.
인간의 유전체의 많은 부분은 단백질 합성을 지시하는 유전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한때 이런 유전체 영역을 '정크 DNA(junk DNA)'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비 부호화(non-coding)' 영역의 비밀이 하나둘 풀리면서 '정크(쓰레기)'라는 표현은 쓰기 어렵게 됐다. 유전 정보가 없는 '비 부호화' DNA가, 유전 정보가 있는 일반 DNA((coding DNA)의 발현 과정을 미세하게 조절한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비 부호화' DNA의 유전적 변이도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암 연구소가 주도한 이번 연구엔 미국 하버드대 의대와 T.H. 찬 보건 대학원, 다나-파버 암 연구소, 노르웨이 오슬로대 등의 연구진이 참여했고, 관련 논문은 '브리티시 저널 오브 캔서(British Journal of Cancer)'에 실렸다.
영국 암 연구소가 5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 발견은 암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 즉 왜 암이 누구한텐 생기고, 다른 누구한텐 생기지 않는지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논문의 제1 저자인 하버드대 보건 대학원의 존 콰컨부시 교수는 "(비 부호화 DNA의) 작은 유전적 변이들이 모여,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작용을 미세하게 바꾼다는 게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라면서 "암과 다른 복합 질병에 걸릴 위험을 안고 있는 사람을 미리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비 부호화' DNA 영역에서 발암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된 846개 유형의 유전적 변이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이런 '단일 염기 변이군(SNPs)'은, 유전자 코드의 글자 하나가 개인에 따라 상이한 변화를 일으키는 인간 유전체에서 특이한 존재라고 한다.
브라카(BRCA) 유전자와 같이 유전 정보를 가진 암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보유자의 발암 위험을 높인다. 이와 달리 '비 부호화' SNP는 비교적 많은 사람이 갖고 있지만, 하나하나가 발암 위험을 높이는 정도는 미미하다.
연구진은 13개 신체 조직에서 발견된 600만 개 이상의 유전적 변이를 놓고, 특정 SNP의 존재가 특정 유전자의 발현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비교 분석했다.
연구진을 이를 통해 종양 유전자와 종양 억제 유전자의 발현을 제어하는 '비 부호화' DNA 영역의 변이를 찾아냈다.
이런 발암성 SNP는 면역체계와 '조직 특이 과정(tissue-specific processes)'을 제어하는 영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세포 과정이 암의 발생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연구진은 암 위험을 더 잘 예측하는 AI(인공지능) 모델의 개발을 다음 목표로 정했다. 여러 암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일괄해 조절하는 '통제 센터'를 찾아내는 것도 포함됐다.
영국 암 연구소의 선임 연구 정보 매니저인 에밀리 파딩 박사는 "미미한 유전적 변이는 암 위험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적지만, 이번 연구에서 분석된 유전적 변이는 그 수가 매우 많고, 사람들한테 흔한 것들"이라면서 "잘 알려진 암 유전자나 라이프스타일 같은 요인으론 이유를 알기 어려운, 개인과 가족 간의 암 발생 편차를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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