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장기화에 홍콩 찾는 관광객 끊기고, 소매판매 24% 급감
홍콩 경제 '마이너스 성장'…15년 만에 재정적자 기록
연말연시 축제·행사도 줄줄이 취소…내년에 실업률 더 오를 듯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지난 6월 초부터 만 6개월 동안 이어지는 시위 사태와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홍콩 경제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시위 사태로 홍콩을 찾는 관광객이 급감하고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홍콩 경제는 이미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 재정도 악화해 15년 만에 재정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연말연시 축제, 행사 등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경기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이미 상승세를 보이는 실업률이 내년에 더 오를 것이라는 '실업대란' 공포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시위로 관광객 줄자 소매판매 급감…명품 매장은 '홍콩탈출'
홍콩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금융, 부동산 등과 함께 홍콩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관광과 유통산업이다.
시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홍콩을 찾는 관광객이 급감해 10월 홍콩 방문 관광객 수는 331만 명에 그쳐 작년 동기 대비 43.7% 급감했다.
이는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한 2003년 5월 이후 최대 수준의 관광객 감소율이다.
특히 시위 때마다 중국계 기업과 은행 점포가 공격받는 등 극심한 반중 정서가 표출되자 홍콩을 찾는 중국 본토 관광객의 수가 50% 넘게 줄었다. 중국 본토 관광객은 홍콩을 방문하는 전체 관광객의 80%가량을 차지한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홍콩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센트럴 등의 소매 점포 등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10월 소매 판매액은 301억 홍콩달러(약 4조6천억원)로 작년 동월 대비 24.3% 급감했다. 이는 홍콩 정부가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악의 소매 매출 감소율이다.
특히 보석, 시계 등 고가품 매출은 43% 급감했으며, 의류, 신발 등의 매출도 37%나 줄었다.
이에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기업들이 홍콩 도심 지역의 신규 개점을 연기하거나 매장을 아예 철수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명품 브랜드 프라다는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대형 매장의 임차계약이 내년 6월 끝나면 이 매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44%나 깎아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으나, 프라다 측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영국 백화점 체인 하비 니콜스는 홍콩을 상징하는 대형 쇼핑몰 중 하나인 '퍼시픽 플레이스' 내 1층과 2층을 통째로 임차했었지만, 앞으로는 1층 임차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호텔 산업도 직격탄을 맞아 일부 5성급 호텔의 경우 객실 점유율이 10∼20%대로 떨어진 곳도 속출하고 있다. 호텔 종업원들은 강제 무급휴가, 임금 삭감 등에 이어 이제 해고 공포에 떨고 있다.
◇GDP '마이너스 성장' 기록…15년 만에 정부 재정적자
이러한 관광, 유통, 호텔 산업 등의 침체에 더해 전반적인 소비 심리까지 가라앉고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타격까지 겹치면서 홍콩 경제는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3분기 홍콩 국내총생산(GDP)은 작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으며, 전 분기에 비해서도 3.2% 줄어들었다.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올해 GDP는 작년 동기 대비 1.3%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미·중 무역전쟁과 시위 사태가 홍콩 경제에 이중의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 사태가 초래한 손실이 홍콩 GDP의 2%에 해당한다면서 2004회계연도 이후 15년 만에 재정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올해 재정적자는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 부동산 경기 둔화로 인한 공공토지 판매수익 감소, 중소기업과 저소득층 등을 지원하기 위한 경기부양 지출 증대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홍콩 정부는 올해 168억 홍콩달러(약 2조5천억원)가량의 재정 흑자를 예상했었다.
경기침체가 심각해지면서 홍콩 정부는 지난 8월부터 이달까지 4차례에 걸쳐 총 61억 홍콩달러(약 9천300억원)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추락하는 홍콩 경제를 다시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말연시 행사·축제도 잇따라 취소…구조조정 확산에 '실업대란' 공포
홍콩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연말연시 행사와 축제마저 잇따라 취소되고 있어 경기회복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10월 31일부터 지난달 3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던 세계적인 와인 축제 '와인앤다인'(Wine & Dine)이 취소된 데 이어 지난달 22∼24일 예정됐던 음악예술 축제 '클락켄플랍'(Clockenflap)도 취소됐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12월 31일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불꽃놀이 축제는 예년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열릴 예정이다.
침사추이 지역에서 매년 음력설 기간 열리는 퍼레이드는 내년에는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대 '최후의 보루'로 불렸던 이공대와 가까운 침사추이 지역이 시위의 중심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음력설 퍼레이드를 하지 않는 건 1996년 이 행사가 시작된 후 처음이다.
경기침체가 심각해지자 실업률도 상승세를 보여 이미 3.1% 수준까지 올라섰다. 특히 관광객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요식업종 실업률은 6년 내 최고치인 6.1%에 달한다.
시위 사태가 만 6개월 동안 이어지면서 문을 닫은 식당은 300여 곳에 달하며, 요식업종에서 일자리를 잃은 종업원의 수는 1만2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만약 크리스마스 등 연말연시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면 실업률은 내년에 더욱 상승할 것이라는 '실업대란' 우려마저 나온다.
홍콩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 한인 교포는 "매달 수천만원의 적자가 나고 있어 이미 직원을 여러 명 해고했다"며 "직원들의 일자리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나 아프지만, 시위 사태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여행사 문을 아예 닫아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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