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화 조항 삭제…관습 탓 즉각 이행 불투명
왕세자 주도 여성권 확대 연장선
(서울·테헤란=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 지방행정부는 식당, 카페 등에서 남녀 출입구와 자리를 따로 두도록 하는 성별 분리 규정을 폐지한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에 따라 사우디에서 가족이 아닌 남녀가 같은 출입구로 식당을 드나들 수 있고, 식당 안에서도 함께 앉을 수 있게 됐다.
현재 사우디에선 대다수 식당과 카페에 남녀용 출입구가 다르다.
한 출입구는 여성 혼자나 가족이 사용할 수 있고 다른 문은 남성끼리만 온 손님 전용이다. 식당 안 자리 역시 '가족석'과 '남성 싱글석'이 벽으로 분리됐다.
비단 요식업소뿐 아니라 일부 쇼핑몰에서는 남성 손님이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두기도 한다. 대학을 포함한 국공립 학교 역시 남녀 공학은 금기다.
심지어 결혼식에서도 남녀 하객의 공간을 따로 마련한다. 규모가 작아서 출입구와 좌석을 분리하지 못하는 식당에선 아예 여성 출입을 금지하기도 한다.
이런 종교적 관습은 모두 이슬람 율법 해석에 따라 가족이 아닌 '외간 남녀'가 공공장소에서 마주할 일이 없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종교적 관습이 유연한 무역도시 제다나 수도 리야드의 고급 호텔 식당에서는 이미 출입구와 좌석을 성별로 분리하지 않는 곳도 있다.
중동 이슬람권에서 사우디처럼 엄격하게 남녀를 떼어놓는 나라는 없다.
이번 조처는 공공장소에서 남녀 분리를 이처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하는 것을 막는다는 게 골자다.
지방행정부는 남녀 분리를 금지한다고 명시하지는 않아 남녀를 분리한 식당이 한꺼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무함마드 압둘라 알쿠와이스 메카 시장은 사우디 일간 아랍뉴스에 "이번 조처로 시민, 투자자, 기업을 제약하는 규정이 긍정적으로 완화됐다"라며 "투자, 식당 개업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루바 알하르비는 "가족석은 항상 붐벼 앉을 자리가 없지만 여성과 달리 식당, 카페에 잘 안 가는 남성용 싱글석은 텅텅 비기 일쑤였다"라며 "어차피 식당 밖으로 나가면 남녀가 다시 만나는 마당에 성별 분리는 돈 낭비였다"라고 말했다.
이번 시책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끄는 일련의 사회개혁 정책 '비전 2030'의 일환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석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국 경제를 다변화하기 위한 산업구조 개혁을 자신의 정통성을 뒷받침할 미래비전으로 선포했다.
외국인 투자 유치는 이 같은 경제 체질 개선에 필수이지만 고질적인 남녀차별 제도와 인권 침해는 여성 인력과 시장을 차단하고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주도로 사우디는 지난해 여성의 축구장 입장과 운전을 허용했고, 올해 8월에는 여성이 해외로 출국할 때 남성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마흐람 제도의 일부를 폐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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