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외투자 1호 기업 '코데코' 창업주 흉상 제막
정필립 코데코에너지 대표 "한국국제학교에 장학금 기부"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인도네시아에서 '칼리만탄의 왕'이라 불리었던 최계월 전 코데코(한국남방개발) 창업주의 흉상이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JIKS)에 다음 달 세워진다.
고 최계월 회장의 아들 정필립(66) 코데코에너지 대표는 9일(현지시간) 연합뉴스 특파원과 인터뷰에서 아버지에 대해 "보통 사람들과는 생각과 행동의 '사이즈' 자체가 다른, 정말 대인(大人)이셨다"고 소개했다.
정 대표의 어머니는 1961년 최계월 회장과 재혼했다. 정 대표는 중학생 시절 최 회장을 새 아버지로 만나 많은 사랑과 지원을 받은 것이 인생의 행운이라 생각한다.
정 대표는 "아버지는 정말 최고셨다. 늘 한국에 갇혀서 생각하지 말고 넓은 세계를 보라고 하셨다"며 "아버지가 없었다면 한-인도네시아 관계가 이렇게 뿌리 깊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교육사업에도 관심이 많으셨고 직원들에게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그게 대한민국을 강하게 만들 거라고 하셨다"며 "흉상을 통해 존경받는 한국인, 멋진 한국인 최계월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계월 회장은 1976년 당시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 설립을 위해 거금 13만 달러를 쾌척했다.
정 대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거액의 장학금을 한국국제학교에 기부하고, 체육관도 리모델링 하기로 결정했다.
1919년생인 최 회장은 1963년 코데코를 설립, 보르네오섬 인도네시아령 칼리만탄의 산림을 개발하고, 자바섬 동부 앞바다에서 석유·가스를 채굴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최 회장은 김종필 전 총리의 도움을 받아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 당시 대한민국 정부 전체 외화보유액 4천300만 달러의 10%가 넘는 450만 달러를 빌려 1968년 코데코를 한국의 해외투자 1호 기업으로 만들었다.
최 회장은 담 크기로 유명한 해병대 출신 120여명을 뽑아 독충과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 개발에 투입하고, 비즈니스를 위해 1969년 한국인 최초로 자가용 비행기를 구매하는 등 수 많은 일화를 남겼다.
코데코는 칼리만탄 남부 바뚜리친(Batu Licin) 27만㏊를 개발해 도시로 만들었고, 지금도 현지 중심 도로의 이름은 '잘란 라야 코데코'이다. 최 회장의 성을 붙인 '잘란 초이(Choi)'도 있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온 최 회장은 183㎝의 키와 선이 굵은 얼굴, 은회색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박정희 대통령부터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 수하르토 대통령 등 거물과 어울렸다.
그는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말해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으로 가던 유조선 뱃머리를 돌려 한국에 공급하기도 했다. 코데코의 사훈에는 '조국의 영광'이 포함돼 있다.
현지인들은 그를 '칼리만탄의 왕'이라 불렀고, 이를 제목으로 딴 자서전도 한국에서 출간됐다.
하지만, 1981년 한국인 최초로 해외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든 자바섬 동부 마두라 해상유전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수익이 나지 않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코데코의 사세가 많이 기울었다.
2015년 향년 96세로 최계월 회장이 일본에서 세상을 떠난 뒤 팜농장 등 임업 사업을 이어오던 코데코는 현지인에게 팔렸고, 마두라 유전사업을 하는 코데코에너지는 정 대표가 계속 운영하고 있다.
서마두라 해상 광구에서는 다행히 2002년부터 원유와 가스 생산량이 늘어나 지난해 원유생산량이 하루 5천722배럴, 가스생산량이 하루 1억2천700만 입방피트를 기록했다.
코데코에너지가 생산하는 원유와 가스는 전량 인도네시아에서 소비된다.
코데코에너지는 마두라유전 개발권이 2031년 만료되기에, 인근 다른 광구에 소유한 개발권 지분율을 늘려서 향후 먹거리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정필립 대표는 "아버지는 해외 자원개발의 전설이셨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석유와 가스가 나오고 있지 않으냐"며 "인근 광구 개발 사업을 잘 추진해 500만 달러 규모의 장학재단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noano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