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20%는 해외 나가야" 유언으로 남겨진 김우중 세계경영

입력 2019-12-10 11:15   수정 2019-12-10 18:35

"국민 20%는 해외 나가야" 유언으로 남겨진 김우중 세계경영
어록으로 본 경영철학…'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사람 강조
"실패한 사업가" 자평도…"힘든 경제 일으켜 세운 우리 세대가 전하는 바람"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9일 향년 83세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남긴 이 유명한 말은 1989년 그가 펴낸 자서전의 제목이다.
19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해 자산 규모 기준 국내 2위의 기업으로 일궈냈으나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던 김 전 회장은 파란만장한 생애만큼 많은 말을 남겼다.
그의 말에는 창업 1세대로서의 기업가 정신과 불굴의 의지, 후대에 전하고픈 삶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김 전 회장은 전후 단기 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자긍심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늘 강조해왔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출발해 30년 만에 이만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우리에겐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 없는 게 무엇입니까?"
김 전 회장이 1998년 10월 13일 팍스 코리아나 21 조찬토론 특강에서 한 말이다.
한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성장했다고는 하나 아직 글로벌 기업을 배출해내지는 못했던 시절 그는 어떤 경영자보다도 먼저 '세계경영'에 매진했다.
김 전 회장이 세계경영을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없는, 부족한 것을 찾기보다는 일단 해보자는 의지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의 가장 유명한 말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나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말 또한 그가 추구해온 세계경영 이념을 잘 설명해준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향년 83세 / 연합뉴스 (Yonhapnews)


결과적으로 김 전 회장은 '세계경영'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우는 1998년 말에는 396개 현지법인을 포함해 해외 네트워크가 모두 589곳에 달했고 해외고용 인력은 15만2천명을 기록했으나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는 세계경영 신화의 몰락을 불러왔다.
김 전 회장은 '대우 사태'가 발생한 1999년 10월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한동안 종적을 감춘 뒤 2005년 6월 14일 하노이발 아시아나항공 OZ734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배포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죄의 글'에서 자신을 '실패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글에서 "실패한 기업인으로서 과거의 문제들을 정리하고자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이렇게 돌아오게 됐다"며 "대우그룹이 예기치 못한 IMF 사태를 맞아 그 격랑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국가경제에 부담을 준 것은 전적으로 저 자신의 잘못"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 한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삼성, LG 등 글로벌 기업이 배출해내며 김 전 회장이 꿈꾸던 세계경영을 실현했다.
김 전 회장은 회사를 '소유'하기보다는 '경영'하길 바란 기업인이었다.
김 전 회장은 회사 설립 10년 만인 1977년에 동아방송 신년대담에 출연한 자리에서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가'가 되기보다 '성취형 전문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회사가 잘 나갔을 당시에도 '이제 좀 즐겨도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 같이 잘살게 되기 전까지 우리 세대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 게을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상위 10%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1년 중 28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자정에 공장을 둘러보고 나서야 퇴근했다거나 결혼한 날도 여행이라고 가서 하룻밤 자고 바로 다음 날 오후에 올라왔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다.

김 전 회장은 "경영자는 사업에 미쳐야 모든 것이 보이고 미래도 대비할 수 있게 된다"며 "특히 한창 커나가는 기업에서는 경쟁력의 99%가 경영자에게 달렸다"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은 기업과 경제를 이끄는 총수로서 책임감도 무겁게 느꼈던 기업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1984년 6월 18일 '국제기업인상' 수락 연설에서 "기업은 한 나라, 특히 개발도상국에 있어서는 경제발전을 주도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며 "이는 한국 기업인들에게는 반드시 이뤄야 할 막중한 책임"이라고 역설했다.
김 전 회장은 사람을 강조한 경영자이기도 했다.
그는 2015년 10월 1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한인경제인대회 개회식 특별강연에서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우리에게는 사람 그 자체가 경쟁력이었다"고 말했다.
만화 '미생'으로 더 유명해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영업하는 '상사맨'의 이미지 또한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대우맨'에서 온 것이다. 그만큼 대우가 직원 한명 한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 전 회장의 사람에 대한 애정은 그룹 해체 후에는 후대에 대한 미안함과 당부로 이어진다.
김 전 회장은 말년에 자신이 시장을 개척한 베트남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머물며 '청년 김우중'을 키우는 인재양성 사업에 몰두했다.

그는 2014년 10월 2일 연세대에서 열린 '연세대 상경대학 창립 100주년 기념 초청 특강'에서는 "개발도상국 한국의 마지막 세대가 돼서 '선진 한국'을 물려주고 싶었다"며 "우리는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미안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마지막 유언을 별도로 남기지는 않았다.
다만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김 전 회장이) 청년에 대한 사랑 각별했다"며 "우리 세대가 잘해서 다음 세대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말씀 많이 했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고 청년들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의 20%가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산다"는 말을 되뇌였다고 장 회장은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꿈을 꿨고 꿈을 이뤘지만, 결국 꿈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어록을 담은 저서 '김우중 어록: 나의 시대, 나의 삶, 나의 생각' 서문에서 "아무리 각박해도 꿈조차 망각하는 일은 없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노력한 결과가 오늘의 발전을 낳았다"며 "나의 발언은 어렵고 힘든 시절 경제를 일으켜 세운 우리 세대가 전하는 그 시절의 정서이자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e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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