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보도…성직자·기자·인플루언서들에 '세뇌용 접대관광'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중국의 회유 작전에 굴복해 위구르족 탄압 논란을 외면하기 시작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무슬림 지도자들은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북서부 신장에 차려진 위구르족 집단수용소에 우려를 나타내다가 올해 들어 갑자기 침묵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무슬림 기구인 '무함마디야'의 지도자는 작년 12월 공개서한을 통해 약하고 결백한 위구르 공동체에 자행되는 폭력에 대한 보도를 들어 중국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단체의 고위 관리는 기관지 인터뷰를 통해 신장에 있는 위구르족 캠프가 훌륭하고 안락한 교실을 갖추고 있으며 감옥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국제 인권단체들이 주장하는 위구르족 수용소의 실체와는 상반된 견해라 눈길을 끈다.
국제사회에는 이 캠프가 100만명을 감금한시설로 이슬람을 믿는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을 말살하는 탄압 장소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WSJ은 인도네시아 성직자들의 견해가 손바닥 뒤집듯 바뀐 계기가 중국 정부에서 경비를 제공하는 신장캠프 관광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접대관광에는 인도네시아 이슬람교의 최고위급 지도자 1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 성직자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위구르족의 테러, 신장 캠프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교육장을 답사하고 현지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중국은 신장 캠프가 민족말살을 위한 감금시설이 절대 아니라 극단주의 치유를 위한 직업훈련소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최대 무슬림 기구인 '나흐들라툴 울라마' 소속으로 신장 여행을 다녀온 한 관리는 "중국이 직업기술 훈련으로 극단주의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고 중국 입장을 대변했다.
물론 성직자 중에는 이번 프로그램이 중국 정부가 엄격히 통제하는 '세뇌 관광'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위구르족 인권탄압을 계속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방의 선동에 놀아난다는 동료 성직자들의 비판 속에 압박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의 신장 견학 프로그램은 성직자뿐만 아니라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에 못지 않게 여론을 움직이는 인플루언서들로까지 확대됐다.
인도네시아 신문 '리퍼블리카'에서 일하는 기자인 바유 헤라마완은 신장 여행을 다녀왔다가 오히려 비판 기사를 올렸다. 무슬림들이 재판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슬람식 식단을 고집했다는 이유로 감금됐다는 게 보도 내용이었다.
이 기자는 오보를 낸 데다가 여행의 긍정적인 부분을 보도하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문자 메시지 항의를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받았다.
리퍼블리카는 이 무렵 정체불명의 세력으로부터 사이버공격을 받은 뒤 중국 정부의 보도내용 항의와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가 86만명에 달하는 미스 인도네시아 출신 인플루언서 알리야 누르샤브리나는 하루 500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여행에 참여했다.
그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 모스크를 찍어 "그래, 모스크가 맞다"며 "중국은 모든 종교를 환영한다"는 글을 게시했다.
비정부기구인 '위구르 인권 프로젝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 정부가 최근 신장에서 모스크 100여곳, 공동묘지, 이슬람 건축물들을 파괴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국의 열띤 선전전 속에 다수 권위주의 국가들은 중국의 신장 프로그램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집트, 시리아, 아랍에미리트, 북한, 미얀마는 올해 7월 유엔인권이사회에 서명해 보낸 서한에서 "이제 신장이 안전을 되찾았고 모든 인종집단의 근본적 인권이 보호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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