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록펠러대 연구진, 저널 '네이처'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동물의 배아(embryo)가 발달할 때 각 세포는 상세한 '유전자 발현 매뉴얼'을 갖고 있다.
정확히 어떤 유전자가 언제, 어느 정도로 켜져야 하는지에 대한 유전 정보가 이 매뉴얼에 담겨 있다.
세포가 각자의 매뉴얼대로 실행하려면 이른바 '크로마틴 해석 단백질(chromatin reader protein)'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단백질은 어떤 유전자가 깨어나 발현할지를 확인하는 작용을 한다.
이 유전자 발현 매뉴얼을 해석하는 단백질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윌름즈종양(Wilms' tumor)'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윌름즈종양은 가장 흔한 형태의 소아 신장암이다.
미국 록펠러대의 C.데이비드 앨리스 석좌 교수팀은 이런 내용의 논문을 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앨리스 교수는 이 대학 '크로마틴 생물학·후성유전학 랩(실험실)'의 책임자다.
록펠러대가 18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 발견은 다른 유형의 암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크로마틴 해석 단백질이 문제를 일으키는 건, 새로운 성질을 취득하거나 과도히 활성화되기 때문이라는 게 이번 연구에서 드러났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완 리 링 펜실베이니아대 조교수는 "지금까지 이런 유형의 메커니즘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라면서 "이런 유형의 분자 메커니즘이 다른 유형의 암에도 작용하는지가 질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앨리스 교수 랩에서 박사후과정 연구원으로 일한 완 교수는 수년 전, ENL이라는 크로마틴 해석 단백질이 백혈병을 일으키는 발암 유전자를 활성화한다는 걸 발견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윌름즈종양 환자에서, ENL 생성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자연스럽게 윌름즈종양 쪽으로 관심이 기운 것이다.
앨리스 교수팀은 생쥐의 배아줄기세포에 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이식한 뒤 신장으로 발달하게 유도했다. 그러자 발달 과정에서 윌름즈종양과 비슷한 구조가 생겼다.
ENL 돌연변이를 가진 세포와 그렇지 않은 정상 세포 모두, ENL 단백질은 유전체의 동일한 위치에 결합했다. ENL 돌연변이 단백질도, 어떤 유전자가 켜져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시사한다.
그러나 ENL 돌연변이 단백질은 같은 위치에 너무 많이 몰려, 끊임없이 유전자의 RNA 전사가 일어나게 했다. 이는 유전 정보로 단백질이 형성되기 전에 처음 거치는 단계다.
완 교수는 "비정상적인 유전자 발현으로 인해 세포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지시하는 유전 정보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다"라면서 "그래서 성숙한 신장 세포로 분화하지 못하고, 더 많이 분화하면서도 성숙 단계에 갇혀 종양 형성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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