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대신 수박·석류로 잡귀 쫓는 이란의 동짓밤

입력 2019-12-22 17:47  

팥죽 대신 수박·석류로 잡귀 쫓는 이란의 동짓밤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의 국교는 이슬람이지만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이슬람력(히즈라력)을 쓰는 아랍권과 달리 태양력을 쓴다.
이 때문에 이란에서 춘분(3월 21일)이 새해 첫날이 된다.
또 1월부터 석 달씩 묶어 네개 분기로 1년의 주기를 나누는 한국과 달리 이란은 계절이 기준이다. 봄은 춘분부터 하지, 여름은 하지부터 추분과 같은 식이다.
이 가운데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동지(12월 21일 또는 22일)는 이란인에게는 '얄다'라고 부르는 특별한 날이다.
한국에서 동짓날이 팥죽을 먹어 잡귀를 물리치는 날이라면 이란에선 석류와 수박을 먹는 날이다. 두 나라가 문화적 교집합이 거의 없지만 모두 붉은색 음식을 먹는다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란에서 동지 밤에 석류와 수박을 먹는 풍습의 주술적 이유 역시 한국과 비슷하다.
조로아스터교의 믿음에 따르면 밤은 악을 상징하고,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은 이런 악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하는 날이다.
이란인들은 이에 악이 최고치에 이르는 동짓날 밤에 석류와 수박을 먹는 방편을 마련했다.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이란산 석류는 사랑과 화합, 건강을 상징한다. 여름 과일인 수박 역시 건강과 질병 치유를 뜻하는데, 특히 내년 여름에 뜨거운 기후로 인한 병에 걸리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먹는다.
악의 기운을 이런 좋은 기운으로 이겨낸다는 것이다.


평소 무채색 옷을 주로 입는 이란인들도 이날 만큼은 붉은색 옷을 입어 악의 기운을 막기를 기원한다.
사실 붉은 색은 이란 시아파 무슬림이 가장 숭모하는 이맘 호세인의 적인 수니파 제국을 상징해 이란에서 꺼리는 편이다.
동짓날이 공휴일은 아니지만 이날 밤엔 명절처럼 가족과 친구가 한자리에 모여 석류와 수박을 나눠 먹으며 화목을 다진다. 석류를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말린 석류를 밥에 뿌리거나 스튜처럼 요리해 먹는다.
이날 밤 자신의 소원을 빈 뒤 눈을 감고 두꺼운 하페즈의 시집을 무작위로 편다. 하페즈는 14세기에 활동했던 이란의 대문호다.
밝고 행복한 내용의 시가 나오면 소원이 이뤄지고, 그렇지 않으면 다가올 액운에 대비하면 된다.
일부 지방에선 수박을 먹고 난 뒤 남은 껍데기 4조각을 뒤로 던져 운세를 알아보기도 한다. 녹색이 많이 나올수록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윷놀이와 비슷하다.
가장 밤이 긴 동지 밤엔 되도록 잠을 자지 않아야 악의 기운이 침투하지 못한다는 속설도 있다. 이 때문에 TV에선 밤새 토크쇼, 영화와 같은 특별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친지, 친구가 모여 흥겨운 음악을 틀고 밤샘 파티를 즐긴다.
동짓날 다음날은 관공서와 일반 회사의 출근 시간이 늦춰진다. 가게에서는 얄다를 맞이해 세일 행사를 하기도 한다.
얄다를 즐기는 풍습은 이란뿐 아니라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이 남은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이라크 북부 등 인근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기나긴 동짓밤이 지나면 밤이 점점 짧아지고 비로소 태양이 어둠에 점점 우세해지는 기간이 시작되고 계절은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봄의 시작인 춘분으로 향한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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