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보수관료들에 '시대변화 대응하라' 강력 질책
"서양도 그리스도교 세상 아냐…가톨릭, 시대에 200년 뒤처져"
(로마·서울=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장재은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지역에서조차 가톨릭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한 새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dpa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교황은 21일(현지시간) 교황청 관료 조직인 '쿠리아'(Curia)를 대상으로 한 연례 성탄 강론에서 "우리가 더는 그리스도교 체제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유럽, 서구의 대부분에서 신앙이 더는 일상적 삶의 뚜렷한 전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그 반대로 신앙은 부정되고 조롱당하며 소외되고 비웃음까지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세속화한 서구에서 가톨릭이 점점 영향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대적 변화에 순응해야 교회를 다시 매력적으로 만들고 복음화(예수의 소식을 널리 알리는 일) 임무도 완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가 더는 그리스도교 세상에 있지 않다"며 "우리는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지도,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날 발언은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의 견해를 다시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 전임 교황은 전통적 가톨릭 지역에서 신앙을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복음화를 거론하며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자유화 추세에 맞춰 전통적 교리를 선명하게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2년 선종한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의 언론과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관료들을 꾸짖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가톨릭교회는 200년 뒤처져있다. 왜 우리는 자신을 일깨우지 않나. 무엇이 두려운가"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대주교 출신인 마르티니 추기경은 가톨릭 교계에서 진보적 그룹을 대변해온 인물로 교황 후보로도 거론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은 정적인 게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라는 논리를 설파했다.
교황은 앞서 올해 다른 연설에서도 보수 관료들의 경직된 태도를 악덕처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경직성은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기며 공공선(公共善)의 토대를 소통 결핍과 증오의 지뢰밭으로 만들어버린다"며 "경직된 태도의 뒤에는 항상 모종의 혼란이 도사린다는 점을 명심하자"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교황은 성탄절을 앞두고 쿠리아 관료들을 상대로 성탄 강론을 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 변화를 거부하는 추기경과 관료 집단을 질책하는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양의 세속화 때문에 교리와 복음화를 위한 바티칸 기구들에 반드시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 대상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에 있는 주교들을 감독하는 교황청의 선교기구도 포함된다.
dpa통신은 교황청이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대대적인 쿠리아 직제·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지속해서 교황청 관료 조직의 혁신과 변화를 추진해왔다.
조직 보호를 우선시하는 보수적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전적으로 복음에만 집중하도록 하겠다는 게 그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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