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플랑크 연구소, 저널 '사이언스'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박테리아 같은 병원체가 몸 안에 침투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병이 생기는 건 아니다. 모든 병원체는 병을 일으킬 만큼 무수히 증식해야 비로소 위험해진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 과학자들이 박테리아의 증식 활동을 정탐하는 일종의 '스파이 수용체'를 발견했다. 이 수용체는 박테리아 사이에 오가는 정보를 엿듣고 있다가 너무 많이 증식했다 싶으면 면역체계에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는 세계적인 면역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막스 플랑크 감염 생물학 연구소(MPIIB)의 스테판 카우프만 교수가 주도했고, 관련 논문은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막스플랑크협회(MAX-PLANCK-GESELLSCHAFT)가 지난 20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한 논문 개요에 따르면 박테리아가 교환하는 정보를 인체 세포가 엿들을 수 있는 건 '아릴 하이드로카본 수용체(aryl hydrocarbon receptor)' 덕분이다.
논문의 제1 저자인 페드로 모우라-알베스 박사는 "이 수용체의 정탐 덕에 인체는 병원균의 공격을 퇴치할 적기에 면역체계를 가동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옥스퍼드대의 루트비히 암 연구소에서 연구 그룹 리더를 맡고 있다.
이 수용체는 세균이 서로 정보를 교환할 때 분비하는 '쿼럼 감지 분자(quorum sensing molecules)'라는 저분자 물질을 탐지해, 병원체의 공격 시기를 알아낸다.
이 수용체는 또한 '쿼럼 감지 분자'가 나오는 초기부터 병원체의 활동을 염탐해 면역계의 너무 이른 가동을 막기도 한다.
카우프만 교수는 "작은 수의 박테리아를 따로 남겨 놓는 게 숙주 입장에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라면서 "에너지는 병원균 수가 위험 수위에 도달해 방어체계를 가동해야 할 때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체에 침입한 세균은 충분히 증식했을 때 '발병 인자(virulence factors)'라는 물질을 분비해 우리 몸을 질병 상태로 유도한다.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병을 일으키는 '기회 감염성 병원체(opportunistic pathogens)'는 이 단계까지 가기가 어렵다. 아주 많은 수로 증식해야 비로소 '발병 인자'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세균 중 하나인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은 수도관, 세면기 등 생활 환경에 많이 서식해 누구나 쉽게 감염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녹농균은 먼저 '발병 인자'를 만들어 숙주 안에 공격 기반을 확보한다.
이런 식으로 입원 환자 등에 폐렴, 상처 감염, 균혈증(bacteraemia), 패혈증 등을 일으키는 녹농균은 항생제 내성이 유난히 강해 치료가 어렵다.
녹농균도 '쿼럼 감지 분자'를 분비해, 동종 세균의 밀도가 높아졌다고 확인되면 '발병 인자'와 '점액질 분자'를 생성하기도 한다. 이 점액질 분자는 항생제나 면역체계로부터 세균을 보호한다.
녹농균 같은 세균의 이런 정보 교환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막아 준다는 점에서도 이롭다. 동종 세균이 충분히 증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병 인자나 점액질 분자를 생성하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가 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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