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UCSD 의대, 저널 '네이처 메디신'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보통 자폐증으로 통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의 원인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과학자들의 일반적 추론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모두 작용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른바 '드보노(de novo) 돌연변이'와 연관된 ASD 사례가 상당수 보고된다. 이는 부모의 DNA에서 유전되지 않았는데도 자녀에게 나타나는 돌연변이를 말한다.
아버지의 정자에서만 발견되는 드보노 돌연변이를 검사해, 미래에 자녀에게 닥칠 ASD 발병 위험을 정확히 예측하는 진단법을,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의대 등의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관련 논문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저널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실렸다.
UCSD가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최근 연구에선 ASD의 10~30%가 드노보 돌연변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됐다.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인 UCSD 의대의 조너선 스밧 교수는 "어린이 59명 중 한 명꼴로 자폐증이 오는데 이 중 상당수가 드노보 DNA 변이에서 비롯된다"라면서 "일부 드노보 돌연변이를 아버지까지 역추적해, 미래의 자녀한테 같은 돌연변이가 생길 위험을 평가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학 '신경정신 질환 분자 유전체 센터'의 책임자다.
'드노보'는 '새로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로, 간단한 전구물질에서 어떤 물질이 새롭게 합성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단백질 생합성의 경우 기존의 고분자 폴리펩티드가 어떤 작용에 의해 활성화되는 게 아니라, 아미노산 단계부터 새로운 펩티드 결합으로 생성되는 걸 '드노보 합성'이라 한다.
드노보 돌연변이는 부모의 정자나 난자, 또는 수정 과정에 생기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생긴 수정체가 분열하면, 나눠진 각각의 세포에도 동일한 돌연변이가 존재한다. ASD와 연관된 드노보 돌연변이는 수정 시점의 아버지 나이에 따라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번 연구에선 특히 정자가 드노보 돌연변이의 중요한 원천으로 지목됐다. 이런 돌연변이가 같은 가계에 다시 출현할 확률은 1~3%로 추정됐다.
공동 수석저자 중 한 명인 같은 의대의 조지프 글리슨 신경학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제시된 추정치는, 개별 가정이 안고 있는 위험이 아니라, 모든 인구에서 생길 수 있는 빈도를 말하는 것"이라면서 "ASD 유발 돌연변이가 처음 발견됐을 땐 후손에 나타날 확률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자녀가 ASD에 걸린 남성 8명의 정자를 기증받아, 한 사람의 몸 안에 유전적으로 다른 세포가 있는지 검사했다.
이렇게 하나의 개체에 다른 유전형의 세포가 섞여 있는 걸 유전학에선 '모자이크 현상(mosaicism)'이라고 한다. 체세포 변이로 생긴 모자이크 현상은 후손에 전해지지 않지만, 생식세포가 변이한 경우엔 유전될 수 있다.
연구진은 광범위한 유전체 염기서열을 심도 있게 분석한 끝에, 아버지 정자의 드노보 돌연변이하고만 일치하는 자녀의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이 결과는, 모든 세포가 동일한 DNA 카피를 갖는다는 교과서 이론에 반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두 개의 세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논문의 제1 저자인, 글리슨 교수 랩(실험실)의 마틴 브루스 박사는 "모자이크 현상은 암을 유발할 수 있지만, 그냥 조용히 지나가기도 한다"라면서 "발달 초기의 돌연변이와 달리 정자에만 돌연변이가 생기면 아버지한텐 아무 병도 생기지 않고 자녀에게만 나타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오랜 실험 끝에 내린 결론은, 아버지 정자 세포의 최대 15%에 질병 유발 돌연변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혈액 샘플 검사 등 다른 방법으론 이런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한 임상 시험이 이뤄지면, 위험한 드노보 돌연변이가 자녀에게 나타날 위험을 정자 검사로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한다.
한편, 이 연구엔 미국의 웨일 코넬 의대·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뉴욕주립대 의대, 스페인 무투아 테라사 대학병원 등의 과학자들도 참여했다.
che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