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성간 기자 =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은 지금까지 거의 정설로 여겨져 온 뇌 신경세포의 표면 단백질 베타 아밀로이드의 응집이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베타 아밀로이드가 잘못 접히면서 서로 뭉쳐 플라크(plaque)를 형성하면 독성을 띠면서 신경세포의 신호전달 시스템인 시냅스(synapse)를 파괴,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치매 전문가들은 굳게 믿고 있다.
미국 재향군인 샌디에이고 헬스케어 시스템(VA San Diego Healthcare System)의 케슬리 토머스 박사 연구팀은 치매 초기의 미세한 인지기능 저하는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 출현 이후가 아니라 그 전에 시작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메디컬 익스프레스와 헬스데이 뉴스가 30일 보도했다.
747명(평균연령 72세)을 대상으로 기억력과 사고력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4년에 걸쳐 여러 가지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매년 뇌 촬영을 통해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수치를 측정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이들을 기억력과 사고력에 미세한 변화가 나타난 그룹(153명), 치매로 이어질 수 있는 경도인지장애(MCI: mild cognitive impairment) 그룹(289명), 기억력과 사고력이 정상인 그룹(305명)으로 나누어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출현과 증가 속도를 비교했다.
인지기능이 미세하게 떨어지는 변화가 나타난 그룹은 그전에는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없었으며 변화가 나타나면서부터 인지기능이 정상인 그룹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치매의 초기에 영향을 받는 뇌 부위인 내 후각 피질(entorhinal cortex)이 빠르게 위축됐다.
MCI 그룹은 처음부터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인지기능이 정상인 그룹보다 많았지만, 그 후 증가하는 속도는 인지기능이 정상인 그룹보다 빠르지 않았다.
그 대신 내 후각 피질과 기억 중추인 해마가 급속히 위축됐다.
이 결과는 치매의 주범이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아니며 따라서 치료의 표적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치매의 원인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치매의 실험 신약인 베루베세스타트(verubecestat) 임상시험에서 이 약이 투여된 치매 환자는 뇌 신경세포와 뇌척수액에서 모두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줄었지만 치매 증상이 완화되거나 진행이 느려지지는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다른 치매 원인으로 지목돼온 뇌 신경세포 내부 단백질인 타우(tau)의 엉킴(tangle) 현상이 인지기능의 저하와 꾸준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인지기능의 미세한 변화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타우 엉킴 현상이 시작되는 것인지를 추가 연구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베타 아밀로이드의 응집과 타우 단백질 엉킴이 모두 치매를 유발하지만 베타 아밀로이드 응집은 '주범'이고 타우 단백질 엉킴은 '공범'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표적으로 하는 많은 치료물질이 개발돼 임상시험이 진행됐다. 그러나 나타난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신경학회(American Academy of Neurology) 학술지 '신경학'(Neurology) 온라인판(12월 30일 자)에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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