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중추인 최정예군 사령관…중동 내 이란 군부 네트워크 설계자
미국과 대리전 기획하다 사망…미국엔 '눈엣가시'
(테헤란·서울=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현윤경 기자 = 3일(현지시간) 미군의 폭격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망한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부대인 쿠드스군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 소장(63)은 이란 군부의 최고 실세로 꼽힌다.
쿠드스군이 혁명수비대의 해외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만큼 그는 중동 내 친이란 무장조직(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정책과 작전을 설계하는 핵심 인사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정치권과 경제계까지 영향력이 큰 만큼 이란에서 그의 존재감과 실제 권력은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계급은 소장이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최고지도자 다음으로 이란의 '권력 서열 이인자'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1999년 개혁 성향의 대학생들이 시위를 일으키자 모하마드 하타미 당시 대통령에게 "오늘 이슬람 혁명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결단을 하지 못하겠으면 내일은 너무 늦을 것이다"라고 경고 서한을 보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익명을 요구한 테헤란의 한 정치 평론가는 연합뉴스에 "이란에서 중요한 정치, 외교 현안이 생기면 대통령보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입에 더 시선이 쏠린다는 말도 있다"라며 "그의 사망은 이란 내부뿐 아니라 중동 전체에 매우 대단한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4년 주기의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항상 보수 세력의 지지 속에 출마가 거론되곤 했다.
그는 대선 출마를 거듭 부인했지만 보수 세력의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 속에 '언젠가는 한 번 출마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라앉지 않았다.
혁명수비대는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폭사했다고 확인하는 성명에서 '이슬람을 전파하고 쿠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람들을 수호하는 데 일평생을 바친 대체 불가한 영웅'이라고 칭했다.
그의 영향력은 이란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1일 이라크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이튿날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바그다드로 급히 날아가 이라크 정부 핵심 인사들을 소집해 대책 회의를 주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두 이라크 관리는 지난해 10월 AP통신에 "이란에서도 (2017년 말)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는데 통제했다. 우리는 이런 시위를 어떻게 다루는지 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다녀간 다음 날부터 이라크 군경이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했고, 사상자가 대규모로 났다며 연관성을 부각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79년 이란 혁명 발발 당시 창설된 혁명수비대에 가담해 팔레비 왕조의 붕괴에 일조했다.
사담 후세인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1980∼88년) 당시 사단장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워 명성을 얻은 뒤 1998년 쿠드스군 총사령관에 임명돼 20년간 이 자리를 지켰다.
특히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가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을 벌일 때 전장에 직접 나가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2017년 솔레이마니 사령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암과 같은 악성 종양을 분쇄해 중동과 무슬림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와 인류에 크게 기여했다"고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벌어진 IS 격퇴전에서 혁명수비대의 역할을 강조하며, 그를 치하하기도 했다.
이란에선 영웅 대우를 받아온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반대로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는 '눈엣가시'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혁명수비대 가운데서도 쿠드스군을 테러리즘 지원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란의 존재감을 공고히 하고 중동 일대를 이란에 유리하게 재편하는 노력을 주도해온 주역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최근 이라크에서 미국과 이란의 대리군 격인 시아파 민병대의 충돌이 잦아진 배경에도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있었다는 관측도 제기돼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작년 5월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라크 내 민병대 지도자들을 만나 이라크에서 미국과의 대리전 준비를 지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 같은 이유를 들어 그를 자국의 이익과 안전을 위협하는 핵심 인물로 간주하며 제거를 노려왔다.
이란 당국은 지난해 10월에도 그에 대한 암살 시도를 적발했다고 발표하며, 그 배후로 아랍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을 지목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앞서 지난해 5월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길에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과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를 사주해 간접적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을 공격하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며 "그런 공격이 벌어진다면 쿠드스군의 책임"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 행정부는 혁명수비대 핵심 쿠드스군을 이끄는 솔레이마니 사령관 등 개인과 이 조직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법인을 테러리즘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설전도 마다하지 않는 등 이란과 미국의 대치 국면에서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맺었던 이란 핵 합의(JCPOA)를 '최악의 합의'라며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에 대한 적대적인 발언을 쏟아내자 트럼프 대통령에 직접 '맞짱'을 떠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미국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차용해 '제재가 오고 있다'(Sanctions are coming)는 문구를 자신의 모습과 합성한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자,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곧바로 이를 패러디 해 "내가 당신과 맞서겠다'(I will stand against you)는 문구와 함께 비장한 자신의 옆모습을 합성한 포스터를 게시했다.
그러면서 "올 테면 오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당신을 막겠다. 쿠드스군이 당신을 막겠다. 전쟁은 당신이 시작했으나 끝내는 건 우리"라고 경고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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