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양국 정상의 다른 스타일·정치환경 등이 갈등에 영향"
"'유럽의 엔진' 양국 관계 작동해야 유럽도 전진"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유럽연합(EU)이 올해 어느 해보다 굵직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2020년 유럽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EU의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의 알력 해소라는 지적이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일(현지시간) '메르켈과 마크롱은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를 다시 정상궤도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올해 유럽의 성취가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 회복에 달려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는 "EU 내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관계를 꼽자면 프랑스-독일 관계인데, 현재 지독히 나쁜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양국 관계가 이처럼 매끄럽지 않은 것은 현재 양국을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성격이나, 두 정상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판이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가디언의 지적이다.
야심가에 인내심이 부족하고, 때때로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41세의 젊은 초선 대통령인 마크롱과 신중하고, 실용적이며, 합의 구축을 중시하는 관록의 4선 총리 메르켈 사이에는 스타일 면에서도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또한 두 정상이 처한 국내 정치 상황이 다른 것도 양국 관계가 삐걱거리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임기 반환점을 돌며 여전히 공고한 권력을 향유하고 있는 마크롱은 2021년 임기 종료 후 총리직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밝힌 이후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 메르켈 총리와의 협상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대연정의 소수파인 사회민주당의 분열로 대연정이 존속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조기 총선이 실시되면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녹색당의 거센 도전이 예상되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프랑수아 하이스부르 소장은 "독일은 정치적 마비 상태에 놓여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아마 내년 9월 선거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프랑스가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독일은 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는 데 마크롱은 좌절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레너드 집행이사는 "마크롱은 근본적으로 독일과의 새로운 관계 구축, 프랑스의 개혁, 유럽 개조를 위한 독일과의 협력에 전 모든 것을 걸었다"며 "그는 독일어를 하는 각료를 내각에 배치하고, 임기 첫해를 독일에 구애하는 데 보냈지만,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시한 연장, EU 집행위원회 고위직 임명 등 중요한 사안에 있어 다른 나라와 협의 없이 자신의 주장부터 개진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성향도 독일과 프랑스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식 후 열린 만찬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뇌사에 빠졌다"는 발언이 포함된 마크롱 대통령의 앞선 인터뷰를 문제 삼으며 "뒷수습을 하는 데 지쳤다"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경제, 외교, 군사에 있어 유럽의 양대 축인 두 나라의 관계는 1950년대 이래 유럽을 움직이는 엔진 역할을 해왔다.
양국 관계가 작동하면, 유럽은 전진했고, 양국 관계가 작동을 멈추면 유럽 역시 멈춘 것이 그동안의 역사라고 가디언은 강조했다.
레너드 이사는 유럽이 올해 새 예산안 수립,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개혁, 디지털기업 과세, 대(對)러시아 관계 설정 등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양국이 합의를 이루고,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해도 이런 결정이 어려울 텐데, 만약 합의를 할 수 없고, 준비도 안 된다면 (결정이) 아주 아주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양국의 관계가 완전히 암울한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갈등을 떠나, 꾸준하고, 일상적인 협력관계는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독일 외교관은 "독일-프랑스 관계는 아코디언의 두 부분과 같다"며 "때로는 한쪽을 조금 더 잡아당기지만, 양쪽이 다시 함께 돌아온다. 각각의 부분은 서로 합쳐야 좋은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하이스부르 소장은 "독일은 독일이 EU 순회 의장국을 맡는 올해 하반기에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싶어하고, 아마 (양국 관계에) 일부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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