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 사업화에 행정·법률 지원 필요" 한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7일 대전지방검찰청은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을 사기와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이 2010∼2014년께 정부 지원으로 얻은 연구 결과를 자신의 회사인 '툴젠'의 성과인 것처럼 행세해 툴젠이 서울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이 기술을 이전받게 하고, 직무발명 신고 없이 툴젠 명의로 특허를 출원하도록 했다는 게 대전지검의 설명이다.
김 단장이 이런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지자, 과학기술계에선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연구자가 복잡한 행정·법률 절차를 모르는데, 이런 일을 지원해 주는 곳도 없어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여럿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전 환경부 장관)은 "수사 과정에서 나온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마치 부도덕한 과학자처럼 기소가 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김 단장이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허를 출원하고 벤처를 세우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법적, 행정적 전문성 미흡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 24조원 이상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지만 연구 성과가 경제 성장에 기여토록 하는 회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관리 행정지원 시스템을 재정비, 강화해야 한다"면서 "비전문가가 회계와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실수를 하고 연구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역시 "현 제도에서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려면 범죄자로 몰릴 각오를 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산학협력단과 IBS가 특허 등록 과정에서 어떤 행정적, 법률적 지원을 했는지를 확인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연구에 전념해야 할 과학자가 특허 등록의 행정업무까지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연구관리 시스템을 근원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단장을 둘러싼 의혹은 2018년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시작됐다.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당시 "국비를 지원받아 만든 기술이 사실상 개인 회사로 넘어갔다"고 지적하며, 이 기술이 수천억원대 가치를 지녔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울대는 감사를 실시키로 하면서도, 기술 가치가 수천억대라는 것에 대해서는 "기술이 사업화되기 전에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학기술계 한 관계자 역시 "특허료의 적정 액수를 말하기는 어렵다. 기술의 가치를 계량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같은 의견을 냈다.
작년 9월에는 서울대와 툴젠이 '연구협력 MOU(양해각서)'를 맺고 유전자 가위 특허 문제에 합의하며 문제가 해결되는 듯 했으나, 이번 기소로 재판이 열리게 돼 이슈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김 단장은 원하는 유전자를 마음대로 잘라내고 교정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현재 생명과학 연구에서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질병 치료 분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헌팅턴병이나 혈우병 등 유전성 난치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자른 뒤 다른 DNA(유전물질)로 바꿔주는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또 농작물이나 가축의 유전자를 바꿔 품종을 개량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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