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사 매수해 정치자금 재판 정보 캐낸 혐의…공판기일 확정
공범인 변호사 친구와 대포폰 만들어 통화도…경찰 비밀감청에 포착
佛 최초로 부정부패로 형사법정 서는 전 대통령 오명 써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니콜라 사르코지(65) 전 프랑스 대통령이 판사를 매수해 자신의 불법대선자금 사건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혐의로 끝내 형사 법정에 선다.
파리형사법원은 8일(현지시간)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판사 매수 혐의에 대한 공판 일자를 오는 10월 5~22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사르코지는 자신의 과거 불법 정치자금 재판인 이른바 '베탕쿠르 사건' 심리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대법원에 해당하는 프랑스 파기법원(Cour de cassation)의 질베르 아지베르 판사를 매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프랑스 경제범죄전담검찰(PNF)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파기법원에 올라온 자신의 불법 정치자금 재판과 관련한 대외비 정보를 얻는 대가로 아지베르 판사에게 고위직을 보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르코지가 제안한 자리는 프랑스가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진 이웃 나라인 모나코공국의 고위 사법 관련 직책이었다.
사르코지는 베탕쿠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압수한 자신의 수첩에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을 파기법원의 아지베르 판사를 통해 계속 주장하는 등 배후에서 사법방해 공작을 편 혐의를 받는다.
당시 재판에서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화장품기업 로레알의 상속녀인 릴리안 베탕쿠르(2017년 95세로 별세)로부터 2007년 대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르코지의 최측근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르코지는 이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자신의 친구이자 변호인인 티에리 헤르조그를 아지베르 판사와 연락하는 중간 연락책으로 활용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수사망에 오른 것을 알고는 '폴 비스무스'라는 가명으로 대포폰(차명 전화기)까지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사르코지의 이런 판사매수 혐의는 2014년 프랑스 사정당국의 감청을 통해 처음으로 포착됐다.
사르코지의 사법방해 공작은 갑자기 중단됐는데, 프랑스 검찰은 자신의 대포폰이 감청을 당한다는 사실을 사르코지가 눈치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당시 사르코지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베탕쿠르로부터 거액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정황을 잡아 헤르조그 변호사와 아지베르 판사의 통화를 감청하는 등 비밀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의 첫 혐의 포착 뒤 사르코지와 검·경은 수사와 법원의 예심, 기소 처분에 대한 이의 제기와 파기 등 5년 가까이 공방을 벌였고, 작년에 사르코지 측의 기소 불복 이의제기가 기각되고 나서야 이날 1심 공판기일이 확정됐다.
사르코지의 매수 대상이었던 아지베르 전 판사와 변호사 티에리 헤르조그도 사법방해 혐의로 함께 법정에 선다.
사르코지는 1958년 출범한 프랑스의 현 정치제제인 제5공화국에서 부정부패 혐의로 형사 법정에 서게 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2019년 별세)이 과거 파리시장 재임 시 측근들을 보좌관으로 허위 채용한 혐의(공금유용 등)로 기소돼 징역 2년의 집행유예를 받은 적이 있지만, 이 사건은 부정부패사건은 아니었다.
사르코지는 이번 사건 외에도 여러 건의 부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2011년 사망) 측으로부터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수백만 유로 상당의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으며, 2012년 대선에서 법정한도인 2천250만 유로(290억원 상당)의 갑절에 가까운 4천300만 유로(560억원 상당)의 대선자금을 홍보대행사를 통한 영수증 위조 방법으로 불법 조성한 혐의도 있다.
2007~2012년 대통령에 재임한 사르코지는 지난 2017년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했지만, 소속당인 중도우파 공화당의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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