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야심 없지만…레바논 국민이 원하면 준비돼 있다"
日언론 "기존 주장 반복…일본 정부 관여 근거 제시 안해"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영화를 방불케 하는 탈출극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카를로스 곤 전 닛산(日産)자동차 회장의 행적 일부가 8일 기자회견 등에서 공개됐다.
일본을 무단 출국한 사실이 알려진 후 만 8일여만에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곤 전 회장은 "일본에서 어떻게 출국할 수 있었는지를 말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으나 탈출 과정의 심경 등을 털어놓았다.
아사히(朝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상자에 들어가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의 기분이 어떠했느냐'는 물음에 "확실히 불안했다. 걱정됐다. 하지만 희망도 안고 있었다. 13개월간이나 악몽 속에 있었었던 것 같았다. 검찰관의 얼굴을 봤을 때 악몽이 시작돼 아내의 얼굴을 봤을 때 악몽이 끝났다"고 답했다.
곤 전 닛산 회장 "나는 무죄…정의를 위해 일본 탈출" / 연합뉴스 (Yonhapnews)
상자를 이용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그간 여러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대형 상자에 숨어서 이동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답변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NHK는 일본 간사이(關西)공항의 세관 직원이 곤 전 회장이 출국할 때 숨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상자에 음향기기가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담당자는 입국 때 조사를 담당한 다른 직원으로부터 들은 "내용물은 음향기기"라는 설명을 믿고서 상자 내부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앞서 같은 날 이 상자를 일본으로 반입한 인물은 세관 직원에게 '음향 기기가 들어 있다'고 영어로 설명했다고 NHK는 전했다.
곤 전 회장은 탈출 과정을 영상물로 제작하기 위해 넷플릭스와 접촉했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 "넷플릭스와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닛산과 르노의 전면 통합을 제안했느냐'는 물음에 "그런 일은 없었다. 르노는 전면 통합을 요구했으나 내가 자율성을 지니면 좋겠다고 생각해 양측의 균형을 맞추는 제안을 했다"며 그런데도 자신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곤 전 회장은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출석하라는 연락을 받은 것은 없다"며 진술을 요구받으면 출석할 것이라는 뜻을 표명했다.
그는 경제 위기에 처한 레바논에서 경영자로서의 경험을 살릴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정치적 야심은 없다"면서도 "국민이 내가 경험을 제공하기를 바란다면 물론 그럴 준비는 돼 있다"고 반응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회견에서 "일본 언론은 닛산과 검찰 당국의 주장을 내보내 왔다. 객관적이지 않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곤 전 회장이 직접 선별한 언론만 8일 회견장에서 직접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자사를 포함한 다수 일본 미디어가 배제됐다고 전했다.
곤 전 회장 측은 아사히신문, TV도쿄, 출판사 쇼가쿠칸(小學館)의 현장 취재를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곤 전 회장의 회견 내용에 대해 일본 측은 그리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사히신문은 약 2시간 30분에 걸친 곤 전 회장의 회견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종래의 주장을 반복"했다며 "일본의 사법 제도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의 수사나 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공개된 법정에서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도통신은 곤 전 회장이 일본 정부 관계자가 사건에 관여한 근거 등 핵심에 대한 설명을 거부했다고 평가했다.
곤 전 회장이 일본 당국과 결탁했다며 실명을 거론한 인물인 도요다 마사카즈(豊田正和) 닛산 사외이사는 9일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나 "법률을 위반해 외국으로 나간 사람의 '자작자연(自作自演, 자기가 지은 대본으로 스스로 연기함)'을 상대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반응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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