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삼성그룹 준법경영을 감시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윤곽을 드러냈다. 진보 성향의 노동법 전문가인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그가 직접 선정한 법조계와 학계, 시민사회 등의 외부인사를 중심으로 7명으로 구성된다. 불공정 거래나 부정 청탁, 수상한 후원 등 통상적 분야에 그치지 않고 노조 문제와 경영권 승계 문제의 법 위반 여부까지 성역 없이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 위원장은 9일 기자 간담회에서 위원회 구성과 활동 방향을 제시하며 위원회 사무실도 외부의 독립적인 곳에 설치해 삼성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독자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설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삼성전자 등 7개 주요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이들 계열사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르면 이달 말 공식 출범한다.
삼성 준법 감시위원회가 김 위원장이 의도한 방향과 계획대로 운영된다면 삼성 계열사들의 기업 운영과 경영 과정에서 저질러질 수 있는 각종 비위와 불법행위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파수꾼이 될 수 있다. 위원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삼성 사회공헌업무 총괄 고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부 인사인 데다 대기업 지배구조 등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인사가 많다.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등 시민사회 대표는 물론이고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나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대기업의 불투명한 비민주적 경영 행태에 대해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인 준법 감시 실행 방안도 공개했다. 계열사에 관련 자료 제출이나 시정을 요구하고 이사회에 직접 권고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할 경우에는 계열사 법 위반 사안을 직접 조사하겠다고도 했다. 최고 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받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한 것은 높이 평가한다.
준법감시위가 삼성의 준법 경영을 감시할 파수꾼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삼성의 적극적인 의지가 중요하다. 위원회는 사실 삼성의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횡렬 사건과 관련한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재판장이 준법경영 개선 조처를 주문한 데 따른 대응조치의 성격이 짙다. 위원회가 출범하더라도 과연 삼성의 준법경영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이 진정성을 갖고 협조하지 않으면 위원회는 허울 좋은 대외 홍보용 창구에 그칠 뿐이다. 자료 제출이나 조사 요구에 계열사들이 시늉만 내고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법적 강제성이 없는 위원회는 형식적 기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삼성은 누가 뭐래도 국내 최고 기업이다. 국민들은 최고 기업으로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윤리·책임 경영을 제대로 하길 삼성에 바란다. 이런 국민적 기대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불법경영 흑역사는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증거인멸, 노조 와해 공작 사건 등에서 보인 행태는 과연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지 의심케 한다. 준법감시위 출범을 계기로 부끄러운 과거를 훌훌 털어내고 실적 등 겉모습뿐만 아니라 경영행태까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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